슈바빙은 조그만 카페였다. 와인색, 낡은 천소파가 네다섯 개 놓여 있을 뿐 영업집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는 단조로운 공간에 손님이 들어올까 싶었지만 대부분 만석이었다. 실내의 조도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딱 적당한 정도였다. 사실 그 정도의 조도를 유지해 내는 섬세함과 낡아빠진 소파의 무심함은 결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었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과히 나쁘지 않아서 일부러 실내장식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대로변을 향해 뚫린 창문 쪽이었다. 실내의 면적에 비해 크게 난 창은 좁은 공간의 답답함을 확 거둬주었다. 창으로는 길이 환히 보여,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창을 통해 내가 만나기로 한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풍경은 묘한 몰두를 선사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걸음걸이만으로도 그날의 만남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즐겁거나, 설레거나 혹은 어색하거나, 불편하거나...
만나기도 전에 나는 다가올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발걸음도 뒷모습처럼 무엇을 숨기기 어렵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슈바빙은 우리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공간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집을 나와 습관처럼 그곳으로 갔다.
슈바빙 주인은 백지 같은 여자였다. 도무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 가늠할 수 없었다. 어려 보이기도 하고, 늙어 보이기도 했다. 유부녀인 듯 보이다가 키스 한번 못해본 모태솔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립 그로스 하나 바르지 않은 바싹 마른 얼굴은 일 년 365일 민낯이었다. 그녀는 허리 높이의 낮은 카운터 안쪽 의자에 붙어버린 듯 앉아 있었는데, 일상화의 한 점 같았다. 그렇게 매일 드나들어도 알은체하는 적이 없었고, 몇 년간 아무와도 말을 트지 않았다. 그토록 변화가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으니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인 듯 보였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그곳에서 성장했다.
서로에게 고백을 하고, 채이고, 또다시 서툰 고백을 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취하고....
슈바빙과 성장의 시간을 송두리째 공유했다.
그리고 늘 그녀가 함께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대로였다. 가끔 민망한 순간이 연출되면 설핏 그녀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지만 곧 뻔뻔할 만큼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모두 졸업을 하거나 취직을 하고 군대를 가기도 하면서 슈바빙과 멀어졌다.
나도 사회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도 없이 슈바빙에 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회귀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같은 자리 낮은 카운터 앞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어른스러운 옷차림을 한 나를 보고 그녀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알아본 것이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술잔을 앞에 두고 그녀와 말을 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그녀는 그때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잊었던 부분까지도 상세하게 떠올리는 그녀의 기억력이 놀라웠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한 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관찰하고 있었는지... 내가 뜬금없이 그녀를 향해 고마웠고, 창피했다고 말하니 그녀는 “재미있었어요...”라고 짧게 대꾸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슈바빙에 가기 싫었다. 학교 앞에서 약속이 생길 때면 오히려 그곳을 피해서 약속을 잡았다. 서로 말을 튼 그녀가 도리어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관찰자였을 때가 편안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학교 근처에 들렸을 땐 슈바빙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전문점인 시애틀 에스프레소가 들어서 있었다.
삐삐가 사라지고 비디오테이프가 사라지듯 그녀와 슈바빙도 우리의 시절과 함께 지나가 버렸다. 가끔 팔십 노인이 되어 있을 그녀를 상상해 본다. 여전히 혼자일 테고 말이 없을 거 같다.
살아보니 알겠다. 관찰자의 모습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 차라리 작은 참견이나 알은체가 훨씬 쉽고 편리하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은밀한 일기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녁이면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빛나는 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 부럽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