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몇 년 전 바닷가 도시에 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소일 삼아 집에서 작은 쿠킹 클래스를 운영했다. 일주일에 세 번, 서너 명의 수강생들이 모여 요리를 하고, 그날 배운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외롭거나 심심한 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화요일 반의 수강생이었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두 명은 그 도시의 토박이였지만 그녀는 나처럼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외지인이었다. 그녀들은 수업 후에도 한, 두 시간을 넘긴 채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다 보니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되었다. 8월 둘째 주 화요일, 나는 맥주 안주에 어울릴만한 문어 요리인 뽈뽀를 메뉴 중 하나로 선택했다.
“아앗!”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녀가 팔을 잡고 펄쩍 뛰어오른 건 문어를 삶는 단계에서였다. 옆의 수강생이 펄펄 끓는 물에 데친 문어를 꺼내다가 그녀의 팔에 떨어뜨린 것이다. 문어가 셔츠 소매에 쩍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그녀가 소매를 급하게 걷어 올리며 찬물에 팔을 담그는 순간 우리는 그녀의 팔꿈치 바깥쪽 피부가 이상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커 보이는 그것은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표면은 세세하게 갈라진 뱀의 피부처럼 보였다. 점점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투명하게 변해갔는데 놀랍게도 작은 심장처럼 팔딱팔딱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친 거 아니에요. 원래 이래요.” 당황해하는 우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애써 아무것도 아닌 듯이 말했다. “놀라면 이렇게 돼요. 팔에 심장을 하나 더 가진 셈이죠.” 마지막 말에는 약간의 장난기까지 섞여 있었다.
그날 오후 문제의 문어와 함께 맥주를 나눠 마셨다. 뽈뽀는 다행히 맛있었다.
“술을 마시니 더 빨갛게 변하네요...” 취기가 오르자 수강생 중 하나가 그녀의 그것에 호기심을 갖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팔에 두 번째 심장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열 살 무렵 심한 열병을 앓은 직후 생겨난 반점은 처음에는 열이 날 때만 빨갛게 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커지더니 심장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기 시작했다.
놀라거나, 흥분하거나, 슬프거나... 심장이 뛰면 팔의 그것도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여름이 되어도 소매가 없는 옷을 입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비밀스러운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한 남자가 비밀스러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남자는 그녀의 빨간 피부조직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그녀의 그것을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면 제2의 심장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더욱 빨갛게 변하고는 했는데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더 흥분할 정도였다. 말보다는 그것의 변화가 더 확실했다. 처음에 그들은 제2의 심장 덕분에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팔딱이는 그녀의 심장을 쓰다듬으며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심장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츰 남자는 그녀의 빨간 피부조직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말 따위는 그들의 관계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 보다 그녀의 그것을 그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앞에서도 소매가 짧은 옷을 입지 않았다. 팔을 가린 채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그는 왜 마음을 숨기냐고 다그쳤다.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녀의 또 다른 심장이 빨개졌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팔딱대는 것을 반복적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서로를 가볍게 안았다.
셔츠를 걸치면서 그녀가 무심코 말했다.
“마음을 숨길 수 없으면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