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4 픽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아 Aug 15. 2022

수민이라는 이름의 향기

A4 픽션-손바닥 소설


그들은 아직 서로의 체취가 익숙하지 않은 얼마 안 된 부부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겨우 22개월이 지났을 뿐이었다. 남자는 아주 예민한 성격이었고 여자는 장난기 많은 가벼운 성격이었다. 특히 여자는 코를 킁킁대며 남자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냄새 맡기를 좋아했다. 남자는 그런 짓궂은 장난에 살짝 놀랐지만 아직은 그런 것들이 재미있을 사이였다. 밤이 지나 아침이 되면 남자는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했다. 그럴 때면 그는 밖을 바라보며 깊이 심호흡했다. 공기가 달았다. 낮은 아파트 창밖으로 그들을 닮은 어린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싱그러운 신혼의 향기가 그들의 공간을 지나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참 좋은 날들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들이 결혼하고 첫 번째 겨울 어느 날 남자는 샤워 도중 코피를 쏟았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날 그 일이 반복되자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몇 번의 검사 끝에 아주 어려운 병이 생겨났음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긴장했고 그 소식을 들은 여자는 무서울 일이 닥칠까 울기 시작했다. 이제 막 함께 사는 즐거움을 알게 된 그들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이었다.


‘수술하면 살 수 있다고 하잖아. 괜찮아. 냄새 맡기만 좀 어려울 뿐이지…. 큰일 아니야.’ 남자는 애써 태연하게 여자를 달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두려웠지만 나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수술 전날 그들은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수술만 잘 되면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다시 흘렀다. 남자의 젊은 몸은 회복이 빨랐다. 금세 다시 일어나 일을 하고 일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들은 뭔가가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는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 남자가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냄새가 사라지면서 맛도 함께 사라졌다. 미각과 후각은 바늘과 실처럼 아주 긴밀하게 붙어있었다. 그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커피는 그저 물이었다. 질감은 살아있지만, 그것이 고급진 소고기이건 닭고기이건 그에겐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맛의 상실은 잃어버린 냄새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바깥공기의 신선함도 더는 느낄 수 없었다. 겉으로 변한 것은 없어 보였지만 가장 기본적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눈도 뜨지 못하는 신생아가 냄새를 쫓아 엄마의 젖꼭지를 무는 것처럼 냄새는 본능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었다.     

그는 상해버린 음식을 먹을까 두려웠고 자신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날까 두려웠다. 밀폐된 장소에서는 행여 가스 냄새 같은 것을 맡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어있는 본능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울이 파도처럼 그를 덮쳤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시각이면 그는 조용히 앉아 이제껏 알았던 냄새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저장해 두고 기억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잊어버릴까 봐 하루도 빼지 않고 노력했다.

소금기가 스며있는 바다 냄새부터 시작하자. 햇볕에 바싹 말려진 빨래, 금방 지은 밥, 풋사과, 시원한 향의 비누, 운동 후의 땀, 심지어 자신의 배설물 냄새까지 골똘하게 생각하며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여자의 냄새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여자의 냄새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달콤하거나 시원하거나 아니면 아기의 살 내음처럼 포근했을 텐데….


지독히 외로웠다. 여자가 아무리 무심한 척 장난을 걸어도 그는 잘 웃지 못했다. 그들은 같이 무엇을 해도 더는 즐겁지 않았다.

한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제 너무 오래된 부부처럼 생활했다. 나눌 말도 없었다. 따로 먹고 따로 자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휴일 어두운 표정의 여자가 외출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의 모임에 불려 나간다 했다.

‘일찍 올게. 쉬고 있어.’

남자는 차려입은 여자의 모습을 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가 축 처진 여자가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현관 쪽으로 한걸음 두걸음....

‘수민이네.’

여자가 그 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왜? 뭐?’

여자의 몸에서 ‘수민’의 향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했다.


22개월 전 그라스에서 그들은 향수 만들기 클래스에 참여했었다. 서로에게 빠져 골똘히 고르고 고른 향기의 이름을 그는 ‘수민’이라고 지었다. 맑고 시원한 숲의 향취가 돋보인다고 조향사에게 칭찬받았던 향수였다. 

수민이 ‘수민’의 향기와 함께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서 믿을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일렁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그를 궁금해하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