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자기표현
아이 다 키우고 나니 수월하게 키웠든, 힘들게 키웠든 생명을 낳아 키우느라 너무 애쓰고 노력한 내가 대견하다. 너무 애쓰고 노력했다는 말이 쓰면서 와 닿는다. 너무 애썼다. 엄마 노릇 잘 못 할까 봐, 아이 잘 못 키웠다는 이야기 들을까 봐 모든 세포가 아이 키우는데 쏠려있었다. 요즘 나는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말보다 세나 자신도 모르게 세포가 맹렬히 반응한다는 표햔을 즐겨 쓴다. 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이 엄마 역할을 잘해 내지 못할 까 봐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매 순간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감정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에 심어진 강렬한 반응이라 할만하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감정과 생각들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 일시에 반응해서 일상을 점령했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일시에 내 삶이 달라졌다. 한 방향으로 차렷! 아이를 다 키우고 육아에서 해방된 순간, 나를 꽁꽁 묶었던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이었구나 깨닫는다. 아이를 예의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였구나. 아이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이 집중했던 시간들이 아이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화를 낸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내 기대대로 되지 않아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기력했다. 그걸 아이를 통해 채우려 했다는 엄청난 반전 팩트를 몸과 마음으로 확인했을 때 부끄럽고 미안했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내 몸의 온 세포가 잠 잘 틈도 없이 육아와 교육에 집중했다고 생각하니 거의 스토커 수준이었구나 싶다. 아이들 키우면서 큰 아이 사춘기 반항을 계기로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극도의 불안으로 부모교육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그 이후 주욱 사람들의 마음, 성장에 관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아이를 키우고 엄마 역할을 벗어 버릴 수 있었다. 다시 내가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 되면 대체로 가정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간다. 학비로 나가는 돈이 굳은 이유다. 한동안 아들들이 우리 집에서 엄마가 가장 부유하게 산다고 한마디 한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일 다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아들의 푸념을 들으면서 아! 이제야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 싶어 기뻤다. 아들이, 남편이 내 행복에 뭘 해줄 거라는 기대가 없다. 그냥 나대로 행복하다. 돈을 벌어야, 남편이 은퇴 후에 풍족한 연금이 있어야 행복할 거라는 조건이 조금씩 없어진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될 것 같다. 해야만 했던 좋은 엄마 역할이 내가 정말 행복해서 했던 일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면서 더 이상 역할에 매이지 않게 된다. 아직 많이 남았다.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딸 역할, 시어머니 역할, 사회적인 역할, 정서적인 지원자로 살고 싶은 역할들. 하지만 이젠 그런 역할들을 충실히 해 내면 행복할 거라는 목소리에 속지 않는다. 지금 내가 나로 행복하면 끝이다. 그 마음으로 돌보면 된다. 그 에너지로 밥 하고 대화하면 된다. 신기한 건 누구나 한결같이 말하는 이 행복이 저절로 오지 않는다. 자기 안에 질문과 고민의 시간을 거치면서 내적인 경험으로 찾아온다. 젊은 엄마들이 어쩜 그리도 내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지 들을 때 하마터면 충고, 조언, 제안을 쏟아내고 싶을 때가 많다. 사람들의 해법은 100인 100가지이다. 내 아이와의 소통은 아이 안에 답이 있다. 깊은 고통 안에 자기만의 답이 있다.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지지한다. 힘들 때 위로하고 잘 이겨내도록 함께 있어 주고 싶다. 다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돌아간다면 엄마 역할로 나 자신을 덜 볶을 거다. 좋은 엄마 코스프레라고 하던가? 혼자 자책감, 자책의 짐을 다 짊어진 채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떠맡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