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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03. 2020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자신이 ' 해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 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드려야만 한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야만 한다. 잔소리를 줄여야 한다. 아이들을 챙겨야만 한다. 노후를 위해 건강해야만 한다. 많이 배워야 한다, 좋은 학벌을 가져야만 한다. 청소를 해야만 한다. 화가 날 때 화를 참아야만 한다. 보다 나은 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 정리 정돈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야만 한다. 잘 살기 위해 아껴야 한다. 돈을 벌어야만 한다. 좋은 부모여야만 한다. " 쓰다 보니 자꾸 생각난다. 세상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해야만 하는 일의 연속이다. '해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적고 나서 눈을 감고 가만히 느껴본다.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 몸과 마음이 어떤지 느낌을 말해본다.  “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요, 꼼짝달싹할 수 없어요. 어깨가 딱딱해요, 머리가 무거워요, 절망스러워요, 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여요. 무기력해요 " 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 몸과 마음의 느낌이다.  ' 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 의무감은 우리 일상에서 생동감을 빼앗고, 즐거운 에너지로 살지 못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며 사느라 피곤하고 고달프다. 오랫동안 이렇게 살면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직장을 다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해야만 하는' 일이 늘었다. 첫 아이를 시댁에서 키워주었는데 아이를 데려와 키울 때까지 3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주말에는 시댁에서 지내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어 기쁘고 보람 있었다.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있어 홀가분했다. 한 주 직장 생활하고 시댁에서 하룻밤 자고 올라오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직장생활이 지루했다. 지금 생각하니 일상의 반복 때문에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것 같다. 직장 일이 행복하지 않았다. 출퇴근하던 일은 둘째 아이 출산과 함께 그만두었다. 육아와 함께 내 일을 병행하고 싶었지만 어느 한쪽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를 내가 못 견뎌했다. 만성 피로증후군에 온 몸이 탈진 상태가 됐다. " 일을 놓지 않고 육아를 하고 싶다 "는 바람만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야만 하는’ 책임은 엄마 역할로 옮아갔다. 머릿속은 온통 '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해' ' 아이를 사랑해야 해'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해야만 한다'가 많을수록 자주 아이에게 화가 났고, 육아에 대한 당위와 책임이 클수록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가 됐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과 부담 때문에 매번 좌절하고 자책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잘 키워야만 하는 책임이 아니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했으면 좋았을 거다. "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마라!" 이 말이 어떻게 들리는가? 비폭력대화를 배우면서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연민의 중요한 한 형태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의무감이 아니라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뒤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멋지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마음의 의도와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힘들지만 기꺼이 하려고 할 때 함께 기쁘고 즐거울 수 있다. 하지 않으면 상대를 실망시킬 것에 대한 두려움, 가족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 자신이 부끄럽고 부족하다는 수치심, 의무감에서 하는 일은 즐거움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그 일 자체에 저항감을 갖게 된다. 책임감, 의무감으로 시어머니한테 안부 전화를 꼬박꼬박한다 하더라도 며느리로서 도리와 의무는 다하겠지만 마음으로 주고받는 즐거움을 잃는다.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상대의 기대에 맞추느라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며 산다. 우울감, 무기력이라는 대가를 자신이 고스란히 받게 된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비폭력대화 공부를 시작할 즈음은 인생에서 우울감이 가장  큰 시기였다. 누가 나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에서 "~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고, 그대로 따르면 힘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방전된 배터리처럼 금방 소진된 느낌이었고 어떤 일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얼른 할 일을 다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시 일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마치 덮쳐오는 파도를 맞고 있는 것처럼 두렵고 무거웠다. 해야 한다는 당위와 책임이 소소한 일상의 생기와 즐거움을 앗아갔다. 이런 내게 ‘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고,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해도 괜찮아 ’라고 말을 건네준 비폭력대화는 인생의 선물 같은 존재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비폭력대화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위로와 공감을   듣고 나자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 머릿속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그제야 마음 편히 잠을 자고 휴식할 수 있었다. 





 지난해 화이트데이날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둘 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첫째가 자기 생일날 받은 쿠폰으로 초콜릿 두 개를 샀다면서 엄마 선물이라고 하나 갖다 줬다. 속으로 너무 고맙고 기뻤다. 이런 걸 챙기는 아들을 보고 역시 연애하니까 다르네! 흐뭇했다. 맛있게 먹으면서 남편한테 자랑했다. 아들이 엄마 사준 거니까 당신은 아껴 먹으라고. 며칠 지나 둘째가 형이란 톡 한 내용이라면서 은근슬쩍 흘린다. " 형이 엄마 눈치가 보인데. 집에 오갈 때 뭐라도 사들고 들어오라고 해서 엄마 초콜릿 사 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났다. 초콜릿 사 오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부담스럽다네 아들끼리 얘기를 나눴다는 소릴 들으니 화가 났다. 집에 오갈 때 뭐라도 사들고 다니란 말은 남편이 출장 다녀올 때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 공항에서 그 나라 과자 한 봉지, 초콜릿 한 상자라도 선물로 가져오면 기다리는 가족이 행복해할 거라고 한 말이었다. 그때 첫째가 같이 있었다. 어딜 가더라도 조그마한 선물을 챙기면 좋다고 덧붙였다. 그때 기억이 났다. 화가 났던 건 초콜릿을 두 개 산 김에 기꺼이 엄마 하나 줘야겠다는 마음에서 사 왔다고 좋아했던 오해했던 내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 초콜릿 직접 사 먹어도 되는데 그딴 일로 뭘 서운해 하나 싶어 또 창피하다. 지나가면서 한 말이 강요로 들리는 관계라 생각하니 허탈했다. " 이래서 기꺼이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 때 억지로 받는 느낌이 드는구나 싶었다. 주는 마음도 그렇지만 받을 때도 기쁘지 않구나! ‘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은 나를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구나 깨닫게 된다. 내가 즐거울 때 상대도 즐겁고 내가 행복할 때 상대도 행복하단 말의 의미가 이럴 때구나. 자신의 마음이 가장 진심일 때 그때 말하고 행동해야 마음이 전해지는구나. 우리는 마음을 주고받고 싶어 하고 그런 때 진심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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