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82년생 김지영'을 책으로 읽고 한두 세대 늦게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싶다. 여성의 삶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나 소리 지르거나 아프다고 비명 지르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다. 영화가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기다리다 상영 첫날 혼자 보러 갔다. 집 근처 백화점 안에 메가박스가 있어 걸어서 10분이면 영화를 볼 수 있다. 주마간산처럼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고 회사 생활을 계속하면서 매주 주말 시댁을 방문했다. 첫아이를 시어머님이 3살 될 때까지 키워주셨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출근하면서 2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시댁 가서 하루를 아이와 보내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왔다. 영화 주인공 김지영은 육아 때문에 회사를 포기했다. 그 심경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기 버거운 현실. 첫 아이는 그렇게 키웠지만 둘째 출산 즈음 손 털고 집에 들어앉았다. 피로 증후군, 갑상선 저하증으로 모든 기운이 탈탈 털려 어떤 일에도 의욕을 낼 수 없었다. 육아와 일 둘 다 놓지 않으려고 온 에너지를 쓰느라 내 삶의 생기와 즐거움이 모든 기가 빨려 나갔다. 그렇게 사는 의미를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 82년생 김지영' 뒤 에필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 자녀가 오래전 성인이 되었어도 언제나 누구 엄마로 있어야 하는 무한성이 그들을 따라다니고, 그것이 후회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여성들이 엄마인 상태와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싶은 소망 간의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 지도 보여준다. 몇몇 여성은 아이가 없었으면 하는 소망과 실재하는 아이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느낀다" 세대가 다르지만 여성이라면 공통으로 느끼는 아픔이 공명한다. 내 삶과 비슷해서 공감하고 함께 화가 나고, 슬프다. 세대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는 아픔에 대한 연민, 분노 이런 것들이 올라왔다. 95년생이 김지영 영화를 보고 쓴 글이다. " 65년생인 엄마 생각을 많이 했고요. 95년생 제 인생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어떤 시대에 살았지. 나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 앞으로 내 딸은 어떤 시대에 살게 될까?" 영화를 보면서 팔순이 된 친정엄마와 내 삶을 생각했다. 딸이 없으니 아들 둘의 치열할 결혼생활이 떠올랐다.
82년생 김지영의 에피소드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며느리도 딸이라고 하면서 시집간 딸이 와도 며느리는 친정에 보내지 않는 시부모에게, 친정에 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 '빙의' 김지영의 이 증상은 결국 엄마, 며느리로서의 의무와 역할은 용인되지만 누구의 딸, 엄마 이전에 여성으로서 목소리는 낼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김지영은 자신이 하기 힘든 말을 '빙의'를 통해 말한다. 의식이 통제하고 있을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다. 아니 말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불편함을 참고 견딘다. 힘든 일은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일뿐 소리 내서 울거나 비명 지를 줄 모른다. 음소거 상태다. 마음속으로는 무수히 소리치고 요구하고 있지만 입을 떼 소리 내지 못한다. 여성의 자기표현은 이렇게 갇혀있다. 김지영의 문제가 아니라 66년생 나의 문제이고, 팔순 친정엄마의 문제이기도 하다. 육아는 당연히 엄마가 하는 것이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고생한다고 자주 말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아내는 또 몇이나 있을까? 김지영의 빙의는 자신이 원하는 걸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억누른 자기 억압적인 증상이라 본다. 살려니, 살아야 하니 ' 빙의'로라도 힘들면 힘들다고, 친정 가고 싶으면 친정 가고 싶다고, 보내달라고 말해야 살 수 있으니 생긴 병이다.
자기표현은 자기 존재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는 일이다. 말해도 되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다. 말해야 산다. 자기감정과 욕구를 억누른 결과, 답답함을 아이들에게 풀기 때문에 우리나라 엄마들 대부분은 화병 환자다. 걸핏하면 화를 낸다. 화내지 않겠다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돌아서면 화를 낸다. 이유는 아이들이 화내게 만들어서 화를 낸다고 다시 아이들 탓을 한다. 자기 존재의 정당한 표현을 하지 못해 생기는 불편함, 억울함을 아이들에게 모두 푼다. 아이들이 엄마들 감정의 하수구다. 그 모습이 엄마로서 내 모습이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야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한다. 아들 둘을 키우고 결혼생활해내면서 피부에 와 닿게 느낀다. 이건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 한 여성의 몫으로 책임 지우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와도 통한다. 아이를 키우고 나니 여성이 짊어져야 할 고통이 말해도 되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내 딸이 결혼해서 동일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고 며느리가 결혼해서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모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불행과 갈등이 시작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세상을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자기표현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