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면 남 탓? 내 탓?

분노 처방전/ 남 탓을 하든 내 탓을 하든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by 남정하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만약 당신 집에 불이 났다고 쳐 보자 그러면 당신은 무엇보다 먼저 그 불을 끄려고 해야 한다.

집에 불을 지른 자를 잡으러 간 사이 집이 다 타버릴 것이다. 불부터 꺼야 한다.

화가 치밀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화나게 한 상대방에게 앙갚음하려고 계속 입씨름을 한다면

마치 불이 붙은 집을 내버려두고 방화범 잡으러 가는 것과 같다."

화가 났을 때 탓이 길어지면 쉽게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이렇게 화가 날 수밖엔 없도록 불을 지른 원인을 자녀, 남편에게서 찾는다.

오죽하면 이렇게 화를 낼까? 부모가 화가 난 게 누가 봐도 정당하다고 이해받고 싶다.

화가 풀리지 않으면 내 말에 맞장구쳐줄 친구를 찾아가 하소연한다.

화가 난 자신이 결국 옳다는 얘길 듣고 싶은 거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여행을 가는데 바빠서 미처

챙길 시간이 없었다. 출발 하루 전, 확인해 보니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는 아들 때문에 화가 났다.

며칠 전부터 준비하라고 당부를 했는데 입만 아팠다. 화가 난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여행 짐을 챙기다 보면 더 화가 날까 봐 아들에게 시키기로 했다.

필요한 속옷을 사 오라 시켰다. 지갑을 보니 5만 원 밖에 없어 잠시 망설였지만

주면서 팬티 몇 개 사 오라고 보냈다.

30여 분이 흘렀을까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마트를 다녀왔다.

" 팬티 사 왔어요" 하고 내미는데 제일 비싼 팬티 3장을 사 왔고 가져간 5만 원을 다 쓰고 왔다.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 " 세상 물정에 약삭빠르지 못하다"는 비난이 생겼다.

순간, 마침내 "너 잘 만났다 " 쌓았던 화를 아주 대놓고 폭발했다.

만 원짜리가 없어 5만 원 줘서 보냈더니 그걸 홀라당 다 쓰고 와서 화가 났다.

모르겠으면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다 쓰고 온

아들에게 대놓고 화를 낸 것이다.

아들은 엄마가 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를 했어야지 무조건 화만 낸다고 "이래서

엄마랑은 대화가 안된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다시

바꿔오면 되지 않겠냐며 현관문이 부서져라 닫고 나가 버렸다.

아들 행동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 쟤가 매사 저런 식이야! 당신도 봤지? " 내 말에 남편이 직격탄을 날린다.

" 당신이 잘못했네. 나라도 그렇게 사 오라고 돈 줘서 보내면 제일 좋은 팬티 사 오지 안 사?

당신이 보낼 때 잘 챙겨서 보냈어야지! "

남편에게 더 억울한 말을 들은 나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

에게 또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하면 백번 맞는 이야기인데 화가 난 그 상황에는 융통성 없

고 자기 마음대로인 아들이라 비난했다.


누구 탓이 아니다.
단지 화와 분노는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신호다


분노에 관해 공부하면서 가장 괴로왔던 것은 화가 나면 남 탓을 하는 나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자체가 고통이었다.

화가 나면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남 탓을 한다. "네가 화나게 하는 원인이야,

너 때문이야 네가 잘해봐! 화를 내나 엄마가!"

자녀가 화나게 한 방화범이란 혐의를 잡을 때까지 추적해 들어간다.

끝까지 자녀가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땐 앙갚음 단계로 들어간다.

싸늘하게 대하고 휴대전화 사용을 빌미로 잡아 뺏거나 게임을 못하게 한다. 용돈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결국 자녀와의 관계는 엉망이 되고 집에 오면 문을 닫고 나오지 않거나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화가 난 상황에서 부모가 분노하든 자녀가 분노하든 무조건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 아이가 화를 내면 내 탓으로 돌리게 돼요. 내 좀 더 잘 해줬으면 저러지 않았을 데.

혹시 초등학교 다닐 때 바빠서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불평, 불만이 많은 건 아닐까?" 싶

어요. 자녀가 화가 나거나, 부모가 화가 나면 죄책감이 먼저 든다.

다른 부모들은 다들 좋은 부모인데 자신만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화가 나면 자신을 탓하게 된다.

또, 분노하면 처음에는 남 탓을 하다가 화가 조금 가라앉으면

자신을 탓하면서 후회, 자책,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게 된다.

자신을 탓하든 남을 탓하든, 표현하든 억압하든, 피하든 공격하든, 분노는 그대로 남아있

다. 표출방식이 다를 뿐이다. 모든 분노가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지는가?

물어볼 것도 없이 상대방 잘못으로 탓하게 되는가?

분노하면 네 탓을 하든 내 탓을 하든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상대방 잘못으로 돌려

남 탓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탓으로 돌려 후회하고 자책하는 사람이 더 지혜롭게 보일 수 있다.

우리 표현문화가 내 탓을 선호한다. 최소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지만 대신 내 탓은 자신을 죽인다.

화가 나고 분노가 폭발하는 데는 자신 내면에 이유가 있다. 누구 탓이 아니다.

단지 화와 분노는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신호다. 불부터 끄고 화의 씨앗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화에 대한 자각이다. 화의 원인을 외적인 요소에서 찾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 것. 분노에 대한 이해 중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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