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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Nov 05. 2021

가장 힘든 시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

인생에서 용기란 무엇일까?/ 자기표현이 서툰 당신에게

깜깜한 밤이었다. 그날 밤 달이 뜨지 않아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날이었다는 걸 한밤중에 깨서야 실감했다. 어스름 저녁이 시작될 무렵 잠이 든 것 같은데 잠을 자다 깨보니 한방 중이었다. 시간이 몇 시였는지 잘 모르겠다. 나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린 나이였을 것 같다. 6살쯤 됐으려나? 동생은 집에 있고 엄마는 나 혼자 할머니 댁으로 보냈던 것 같다.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면서 버틸걸 그랬다고 생각만 한채 할머니 댁에 갔는데 왜 나만 혼자 가게 됐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집에 가겠다고 혼자 걸어서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까지 걸어 나갔다가 할머니가 뒤쫓아온 바람에 다시 돌아와서 저녁 먹고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깼는지 목이 말라 눈을 떴는지 모르겠다. 암튼 자다가 잠이 깼는데 눈을 떠보니 암흑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 방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이랑 연결된 작은 골방이 있는데 거기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부엌과 골방 사이에 아주 작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문을 열면 가마솥이 있는 곳이어서 평소 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못으로 고정시켜 두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짙은 어둠이 펼쳐져서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두 손을 벽을 더듬으면서 골방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을 찾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쪼끄만 손바닥을 최대한 쫙 펴서 벽을 더듬으며 걸었다. 지금 기억에 골방 벽을 그렇게 손으로 짚으며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았는데 신기하게도 문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방을 뱅글뱅글 10바퀴 이상 돈 것 같은데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어둠 속에 헤매고 있었다. 마치 미로에 갇힌 아이처럼 속으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할머니. 문 열어주세요. 문을 찾을 수 없어요" 

가끔 현재 삶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그동안 잘 살아왔는데 막다른 길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말 어린 시절 할머니 댁 골방에서 한밤중에 깨어 방문을 찾으려고 어둠 속에서 안간힘을 썼는지 알 길이 없다. 다시 그 골방 속 어둠으로 돌아가 그때 내가 어떻게 히먄 좋을지 나에게 물어봤다. "어둠 속에서 혼자 필사로 헤매지 않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할머니를 부를 거야." 


"What is the bravest thing you've ever said? asked the boy. 

"Help" said the horse.

이 구절은 찰리 멕케시(charlie Mackesy)의 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The Boy, The Mole, The Fox and The Hors) e'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아주 특별한 네 친구가 주고받는 우정과 사랑, 희망에 대해 대화하는 책이다. 저자 매카시는 일상에서 삶이란 무엇인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거듭 생각하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는 했는데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용기란 도대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야말로 가장 용기 있는 일이었음을 깨달아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둔 채 까맣게 잊고 있던 매카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메일이 도착해 이 그림을 사용해도 괜찮은지? 문의가 쇄도해 자고 일어나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져 있더라는 후일담이 있다. 

삶을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도움을 청하지 않고 가장 힘든 시기를 혼자 속으로 삭히며 이겨내는 사람은 혼자 이겨낸 경험 때문에 혼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 골방에서 문을 찾기 위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외마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던 어린아이를 떠올리며 어른이 되어 힘들 때, 고통스러울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떠올려 본다. 

'용기'는 마음과 관련된 단어이다. 용기를 뜻하는 영어단어 courage의 어근 cor은 라틴어로 심장을 뜻한다. 처음에 용기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바뀌어 영웅적이고 용감한 행동에 대해 이 말을 사용한다. 용기의 현대적 의미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좋든 나쁘든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내면의 힘과 의지가 빠져 있다. 마음 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브레네 브라운)에 나오는 '용기'에 관한 글이다. 

우린 힘들 때 혼자가 아니다. 도움을 요청해본 사람은 안다. 용기를 내 가장 힘든 시기에 누군가에게 요청을 청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청은 삶에서 가장 필요한 자기표현이다. 또한  도와달라고 표현하는 일이 상대에게 도울 기회를 주는 일인지 모르겠다. 새롭고 진정성 있는 관계의 시작은 요청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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