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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Nov 09. 2021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하는 요청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살면서 난 자주 뒷북을 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힘들 때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고통이 모두 지나간 뒤 웃으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힘들 때 내가 어떤 모습 안지 잘 모른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도 힘들 때 얼마나 힘든지 감정을 잘 모른다. 고통스러울 때 생각으로 감정을 이겨내려고 하는 것 같다. "괜찮아. 걱정스럽지만 잘 이겨낼 거야. 감정에서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말고 머무르라고 했지? 지금 난 두렵고 걱정스러워".   "난 지금 두렵고 걱정스러워" 이렇게  두려움을 생각으로 느끼고 걱정을 곱씹으면서 감정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되돌아보니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는 동안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고통의 감정을 몸의 느낌으로 충분히 느껴 흘려보내는 방법을 모른채 감정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남편이 코르나 확진으로 응급구급차를 타고 실려간 일이 있었다. 연말 추운 날 등산을 갔다 대학 선배를 산에서 만났고 내려와서 술 한잔 하고 술김에 걸어서 천호대교를 건너와 2차를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술이 제법 취한 상태라 그랬는지 지하철을 잘못 갈아타 이리저리 헤매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가 훨씬 넘은 후였다. 다음날부터 열이 나기 시작해 감기약을 먹고 휴식을 취했지만 열이 떨어지지 않아 코르나 검사를 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고 감기 증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감기약을 먹으면서 열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3일이 지났는데 열이 떨어지지 않고 오열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주사는 놓아주지 않고 다시 코르나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음성 판정 후 두 번째 받는 검사여서 한 번 더 검사받고 병원 가서 감기약 처방받으려고 서둘러 PCR  검사를 받았는데 세상에! 코르나 확진 판정이 났다. 아직도 그날 아침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남편은 자기 방에서 거의 5일 동안 꼼짝하지 않고 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르나 검사를 하면 다음날 10시쯤 문자로 검사결과 통지가 온다. 애써 태연한 척 아침 먹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여보, 나 코르나 확진이래." 한다. 남편이 이후 뭐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확진 통보를 받자마자 보건소에서 걸려왔다. 11시까지 응급구급차가 집에 도착하니 준비하라는 전화였다. 연이어 나와 둘째 아들에게도 전화가 왔다. 자가격리 대상이니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대기하라는 지극히 공무원식 통보였다. 순간 마치 먼 과거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소리처럼 모든 일이 들렸고 확진 판정 이후 모든 일은 정해진 수순에 따라 처리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편은 처음 음성 판정을 받고 혼자 증상을 견디느라 병원에 실려가기 전 이미 폐렴 증상이 있었다. 처음부터 코르나 확진을 받았다면 병을 키우지 않았을 텐데 삶은 예측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코르나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폐렴 상태로 병원에 들어간 후 급속하게 호흡곤란을 겪었고 폐 50%가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렇게 병원에서 3주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는 응급실에서 현관까지 걸어 나오는데도 숨이 차 고통스러워했다. 집에 돌아와 3달 정도 회복 시간을 가져서 지금은 잘 회복된 상태이다.


남편이 코르나 확진으로 입원한 그날부터 나와 둘째 아들도 2주 자가격리 기간을 지나야 했고 남편 회복하는 3달 동안 집에서 함께 간호를 했다. 주변에서 코르나 확진 환자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남편이 코르나 확진을 받았고 그것도 치명적인 폐손상을 입었으니 우리 가족이 겪었던 놀람과 공포는 아직 생생하다. 그 일을 겪으면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코르나라는 질병이 한 개인이 잘못해서 걸린 것도 아닌데 전염성 때문에 확진 자체로 기피대상이 된다. 처음에는 잘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자신들 다독거리고 컨트롤하느라 알리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리는 자체가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그 시간이 참 외로웠다. 위로와 지지가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산책을 나갈 수도 없고  장을 보면서 잠시 바람을 쐬며 숨을 쉴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배달 앱으로 커피를 시키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배달 앱이 마치 코르나 환자나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대변화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시스템이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나 한 것 같은 배달 앱이 친한 지인보다 더 소중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심부름해줄 사람이 있다는 자체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때 지인이 전화가 왔다. 한두 주 연락이 없어서 요즘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안부를 물어왔다. 

안부전화를 걸어준 지인이 너무 고마워 눈물을 혼자 줄줄 흘리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속으로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아무 말하지 말고 나 좀 위로해줘. 지금 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해." "나 너무 힘들고 외로워. 커피랑 달달한 케이크 쿠폰 좀 보내줘"라고 수도 없이 말하고 싶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바보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왜 말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원. 나만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이런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남편 건강이 회복되고 난 후 뒤늦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연락해주길 기다리기만 했던 내가 너무 바보같아서 견딜수가 없었다.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내 감정을 억누르다 터지기 일보 직전에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지인에게 함께 가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동행해 주었다. 평소 의지가 된 친구들에게 톡을 보냈다. "나 지금 관심과 사랑이 필요해. 어렵고 힘든 시간을 잘 보내서 정말 다행이고 이제껏 잘 해왔다는 의미에서 커피랑 달달한 케이크 쿠폰 선물해줘" 뒷북이었지만 나를 위해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톡을 읽은 지인들은 늦어서 미안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일 다 끝나고 뒷북쳤지만 늦게라도 내가 원했던 관심과 위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표현을 하고 원했던 선물을 받고 나니

힘들고 억울했던 마음이 좀 풀리는 걸 느꼈다. '남편 일로 얼마나 긴장하고 두려웠니? 이제 괜찮아. 이제 다 지나갔어. 천천히 편안하게 숨 쉬렴' 내가 나를 위로하고 마음을 알아줄 필요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일과 같다. 나를 위해 표현하는 연습을 해라.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란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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