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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Nov 17. 2021

남들보다 예민해서 힘든 당신

자기표현은 시끄러운 마음 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과 같다. 

"물어보지도 않고 항상 자기 마음대로 한단 말이야! "

딴에는 신경 써서 기획서를 만들어 보냈더니 글자 급수를 마음대로 고쳐서 한 장 안에 넣을 내용을 두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마음에 안 들면 원래대로 하자고 말하면 되잖아"  자기 마음대로 고쳐놓고 아님 말면 되지 뭘 그렇게 예민하게 행동하냐고 말하면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다. 매번 상처 받을 때마다 이걸 말해야 할지 그냥 넘겨야 할지 계속 고민이다. 그 순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해도  전화 끊고 나면 불편함이 고스란히 남는다. 감정의 뒤끝은 홀로인 시간에  꼬리를 물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 괴롭힌다. 꼬리를 문 생각이란  상대에 대한 비난, 판단을  하다가 고작 그런 일로 속 끓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비난, 자책으로 이어진다. '한두 번이 아니야. 지난번에 분명히 말했는데 고쳐지지 않아. 차라리 안 만나는 편이 편할 것 같은데 왜 또 연결된 거야?' 함께 일하자고 연락 왔을 때 눈치채지 않게 바쁘다고 거절할 걸 그랬어. 서로 알고 지낸 지 여러 해 지났고 힘들고 외로울 때 도움받은 일도 있어 잘 지내고 싶은 데 왠지 만나면 불편함이 여전하다. 사람을 단호하게 끊지 못하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일까 생각해봤다. 

혼자 불편하게 속으로 삭히느니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하소연 삼아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툭 터놓고 말하기가 어렵다.  속으로 삭히자니 괜히 억울하고 말하자니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싫다. 매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살자니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 우울하다. 예민하다는 말만 들으면 화가 난다. 상처 준 자신의 잘못을 보지 않고 예민하다는 둥, 민감하다는 둥 남 탓하는 친구를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느라 힘들다. '아, 난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이렇게 속앓이 하며 사는 걸 남들이 알까?" 생각하니 서글프고 외롭다.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기분이 들어 더 예민해진다. 


 '예민한'이란 단어는 '신경증적, 감각이 섬세한, 예술적 감각이 있는, 생각이 많은, 마음이 여린, 쉽게 영향받는'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보통 예민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들은 다 웃고 넘어가는데 혼자 웃어넘기지 못할 때 '다른 사람들은 왜 웃지? 내가 잘못했나?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내가 이상한가?' 남과 달리 불편함이 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순간 싸한 기분과 함께 예민함이 작동한다. 예민함은 생겨나기 시작하는 순간 멈춰야 한다. "아니야. 이건 순전히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야"

모임에 갔는데 함께 온 사람에게는 환대하며 "반가워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차 마실래요?" 묻는데 나한테는 물어보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자. "이거 뭐야? 왜 나한테는 안 물어보지? 나한테 감정 있나" 잠시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말을 아낀다. 분위기는 지극히 화기애애한다.  '지난번 그 일을 마음에 담고 나를 무시하는 게 틀림없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면 예민함이 발동하고 있는 중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민함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 예민함을 멈추려면 자신의 예민한 촉과 판단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럴 때 자기표현이 필요하다. 

"오늘 모임을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좀 전에 우리 둘이 왔잖아. 나한테는 눈길을 주기 않고 김대리한테만 반갑다고 인사해서 당황스러웠어. 혹시 나한테 불편한 거 있어?" 순전히 자신의 판단과 추측으로 예민함이 발동하고 있다고 밝히고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묻는 의도라는 걸 차분히 말한다. 이런 자기표현은 자신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참석한 모두의 안녕과 편안함을 위해 꼭 필요하다. 솔직한 표현이 오히려 불편함을 환기하고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지인 중에 냄새에 예민한 사람이 있다. 생선 굽는 냄새에 아주 예민해서 집에서 생선을 구운 날은 영하의 날씨에도 거실문을 30분 이상 열어서 환기를 시킨다. 냄새 때문에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고기는 잘 먹지 않는다. 신선하지 않은 식재료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남들 대부분 맛있다고 먹고 있어도 냄새에 예민한 이 친구 표정은 편치 않다. 예민함은 누가 누구에게 맞출 수 있는 성향이 아니다. 그냥 감각되는 거다. 맛과 냄새가 서로 연관을  냄새를 맡는 순간 몸이 반응한 것뿐이다. 어떻게 고칠 수 있는 성향이 아니다. 예민함은 있는 그대로 그 사람 자체다. 있는 그대로 수용이 필요할 뿐이다.

수용이란 지금 이 순간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정서적으로 열려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어떤 고통스러운 관계에 있을 경우 그 관계 전체를 두고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수용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나 행위가 자신의 기분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알아차릴 때, 많은 이들이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이 자기 연민이다. 자기 연민이란 수용의 한 형태이다. 수용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을 가리킨다면 자기 연민은 그런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다. 자기 연민이란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크리스토퍼 거머 지음)'에 수용과 자기 연민에 이렇게 대해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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