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감각의 영역
'휄든 크라이스'라고 이름을 기억하는데만 한두 달 걸린 '몸 감각훈련' 프로그램을 다니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소매틱' 관련 강좌들의 원조격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지인에게서 프로그램을 소개받을 때 꽂혔던 말은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도록 연습해서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질 수 있다"였다. 늘 하던 방식대로 살다 보니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귀가 열리는 말이었다.
첫날 가서 들으니 휄든 크라이스는 움직임을 통한 심신 학습이라 불리는데 자신 몸의 움직임을 통한 자기 계발법으로, 뇌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고안되었다 한다.
오늘은 천정을 보고 누워서 두 손을 허벅지에 올려 무릎 쪽으로 천천히 내리면서 팔을 더 아래로 내릴 때 온몸(척추, 팔, 고개, 허리, 꼬리뼈, 다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손의 위치에 따라 바닥에 놓친 몸의 어떤 부분에 공간이 생기고 내려앉는지 반복하면서 차이를 느끼는 연습을 했다. '바닥과 소통'이란 말이 나온 건 이쯤이다.
두 다리를 주욱 뻗고 편안하게 누웠을 때 오른쪽, 왼쪽 어느 부위에 힘이 더 들어가 있는지, 바닥과 사이에 공간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살핀다. 매 순간 차이를 느끼는 연습을 한다. 두 다리를 굽혀 엉덩이 있는 곳으로 세워 올렸을 때 바닥에 닿았던 허리에 얼마만큼 공간이 생기는지. 척추 어느 부위가 늘어나고 짧아지는지. 바닥과 닿아 무게를 가장 많이 느끼는 몸의 부분은 어디인지. 선생님은 지속적으로 매 순간 차이를 느끼는 연습을 '바닥과의 소통'이라고 했다. 차이를 느끼는 미세한 관찰을 계속 연습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상태를 찾아가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팔을 넓적 다리에 올려 아래로 내릴 때 가장 수월하게 편안한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알아내기 위해 반복해서 동작을 한다. 조금 더 팔을 내릴 때 애씀이 느껴진다면 좀 더 수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창의적으로 동작을 해보길 제안한다. 살짝 고개를 들고 등에 힘을 주어 둥그렇게 말리도록 하니까 팔이 수월하게 아래로 내려감을 발견한다. 애쓴다는 느낌이 팔이 수월하게 내려가자마자 사라진다. '바닥과의 소통'에 대해 들으면서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떨 때 불편하고 어떨 때 편안한지 계곳 자신의 몸에게 물어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이 정도면 되겠어?". 누워서 수련을 했으니 '바닥과의 소통'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다. 결국 '몸과의 소통'을 의미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휄든 수업을 하고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만큼 집중해서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리는 작업은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는 모양이다. 난 이 수업을 '애벌레 꼼지락 거리기'라고 이름 붙였다. 그만큼 움직임이 없다. 1시간 내내 미세한 움직임의 차이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관찰해야 하는 '민감하고 까탈스러운' 활동이다.
민감한 감각을 고도로 깨어나게 하는 심신 학습이라고 할까? 엄밀히 말하자면 깨어난다기보다 온몸의 감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느끼는 연습이라고 해야겠다.
선생님이 '바닥과의 소통'을 설명할 때 '자신과의 소통'이 떠올랐다. 소통을 할 때 민감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민감함이란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감각인데 미세한 차이는 결국 모임에 가기 전에는 편안하던 마음이 누군가 한 마디에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때 지속적으로 불편함이 올라옴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상태를 말할 수 있다. 감각을 민감하게 느낀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판단될 때 "너 참 예민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다면 예민함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몸의 미세한 차이를 세밀하게 관찰해 느낄 때처럼 자신의 마음과 소통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미세한 불편함이 올라올 때 자신에게 묻고 살펴야 한다. "언제 어떤 말과 행동에 불편해지기 시작했어? 너는 그 사람이 그 말을 할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예전에 그런 말투와 눈빛으로 말한 적 있어? 오늘 컨디션을 어땠어? 모임 오기 전에 기분은 어땠어?"
불편한 표시를 내는 게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될지,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대답을 들어야 기분이 나아질지 또한 자신에게 묻고 감정, 몸, 생각을 예민하게 살펴야 자신과 소통을 잘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민하고 민감해야 그야말로 소통을 잘할 수 있다. 요즘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있다. '자신과 소통을 잘해야 남과 소통을 잘할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 뭐 이런 말이 너무 흔하게 들려서 세밀하게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자신과 잘 소통하는 건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예민하다' '민감하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 예민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둔하고 무감각한 사람보다 예민해서 미세한 자극에도 살갗이 벗겨져 아픈 것처럼 고통을 잘 느끼는 사람이 훨씬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살 수 있다. 예민해져서 불편한 감정을 자신의 몸의 관찰을 통해 멈추고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쏟 아부를 때 고통을 시작된다. '몸과의 소통'과 '자신과의 소통'을 위해 우리는 훨씬 예민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소통을 위해서는 더 예민하게 미세한 차이를 관찰해야 한다. 자신이 어떨 때 가장 편안한 최적의 상태인지를 찾기 위해 가장 불편한 상태가 되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직 난 해보지 않았지만 여러 요가 중 일부는 몸동작으로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한 후 지켜보는 훈련을 한다고 한다. 동작을 끝마쳤을 때 오는 최상의 짧은 평화로움의 경험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
나를 포함해서 예민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날 때부터 예민함을 타고 나왔든, 부모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많은 두려움과 상처가 있든, 삶이 팍팍해서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독립해서 살아오느라 힘이 들었든 상관없이 예민함이 뾰족하게 올라올 때 가만히 멈추고 이렇게 자신을 다독거려 위로해라. "너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데 말하지 못해 힘들었지. 저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못한 건 네 문제가 아니야. 이제껏 살아오느라 얼마나 많이 힘들었니? 애썼어. 네 마음 내가 다 알아. 불평해도 괜찮아. 뭐 어때? 말로라도 툭 털어놓아야 덜 힘들지." 뾰적함이 올라올 때 멈추고 가슴에 손을 가만히 얹는다. 따뜻한 체온이 가슴에 전해지도록 가만히 올려놓고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이미지를 떠올려라.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메시지가 예민한 감정의 부탁이다.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래, 지금 마음이 힘들구나, 이해해, 누구라도 그럴 거야,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괜찮아. 자신을 사랑으로 안아줄 때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예민함이 사라질 것이다. 예민함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하면 진정되는지 이 또한 미세한 관찰로 차이를 살피고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최적의 위로와 다독거림을 찾아내는 과정이 '자신과의 소통'이다. 예민함, 민감함을 이 길로 가는 소중한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