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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Nov 26. 2021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자유롭다

자기 감정을 숨기거나 속이지 않고 잘 표현하는 법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눈에 띄는 내용이 있는데 다 못 볼 것 같을 때 공유하기를 눌러 내 카톡에 저장해 두는 버릇이 있다. 이상하게도 다음에 들어가 그 내용을 검색하면 그 영상만 빼고 나머지를 찾아준다는 사실을 안 이후 생긴 버릇이다. 그렇게 핸드폰에 저장한 영상중에  '마지막 수업'이란 제목의 유튜브에 나온 얼굴이 낯이 익다는 느낌을 들았다. 자세히 보니 이어령 선생님이었다. 암 투병 중이라고 매스컴에 알려진 이어령 선생님인데 예전 위풍당당하던 풍채가 사라져 몰라볼 정도였다.

'마지막 수업'은 이어령 선생님과 마지막 수업을 한 작가 김지수가 쓴 책 이름이다. 이어렴 선생님이 직접 책을 홍보하는 영상이다. 그 중 한 부분을 인용한다. 이어령 선생님은 글을 쓸 때 구체적이고 사소한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추함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일본인들은 숨기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 작가로는 김승옥이 좀 정직하다면 그의 글을 인용한다. "시골에 갔다, 성묘는 안 했다. 비가 와서 하루 더 묵었더니 심심하다. 할 일이 없어 어머니 산소에 갔다. 비가 나를 효자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작가 대부분은 이렇게 안 쓴다며 많은 사람들이 귀찮아서 어머니 산소 가지 않고 돌아와 죄책감이 들어도 좀체 드러내서 얘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잘한 일은 드러내고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일은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김승옥 작가의 솔직함과 진정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순간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와진다. 김승옥 작가의 글을 읽으면 자유롭고 후련함이 느껴진다. 오히려 솔직해서 공감이 간다. 이런 경험이 막 떠오른다. 평소 전화한 통 없다가 친구에게 바람맞은 날 외로와서 부모님께 전화한다. 효도는 인생의 쓴 맛을 맛보아야 하게 된다. 작가를  만나보지 않았지만 김승옥은 자유로운 사람일 것 같다. 자유로운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며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얼핏 자신의 단점, 결핍, 부족한 점, 잘못을 드러내 말하거나 표현하라는 말로 들리기 쉽지만 비폭력대화에서는 솔직함을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마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감정,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의 드러내는 일" 이럴때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위드 코로나로 일상생활을 회복해 가고 있는 요즘은 그래도 모임을 편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올해 9월에 있었던 일이니까 사적 모임 제한이 있던 시기 이야기다. 답답하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 문턱에 와있다는 생각에 미루었던  책모임을 했다.  멤버들 셋이 오랜만에 모였다. 모임 멤버 중에 성북동에 자신의 한옥 가정집을 독립서점으로 운영하는 '성북동 책방'에서 모임을 했다. 오랜만에 모여서 반갑게 인사 나누고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깥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한옥 책방 거실에 에어컨을 켜고 문을 닫고 모임을 하던 중이었다.

내 집같이 편안한 공간이라 마음이 편했다.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어서 편안했고 모임 멤버 셋 밖에 없었고 책이 진열된 한옥 책방 거실에서 하는 모임이라 안심이 됐다. 인사가 오간 후 잠시 마스크를 벗고 편하게 숨을 쉬고 싶어서 맨 얼굴(마스크 벗고)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스크 좀 써요. 문을 좀 열든지 나원 참." 멤버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러웠지만 짜증을 섞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름 배려한다고 한 소리였지만 순간 온몸이 그 자리에 멈춘듯했다. 숨쉬기 어려워 눈을 감았다. 수치심이 느껴졌다. 가슴 정중앙 명치에 뭔가 걸린 듯 꼼짝하지 않았다.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수치심이 어떤 감정인지 제대로 느꼈다. 안 그대로 신경을 쓰고 있던 차였다. 마스크 문제에 예민한 친구여서 눈치보면서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했다. 나름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스크 없이 맨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던 차에 조심스럽지만 짜증 섞인 비난처럼 들려서  상처가 됐다. 매스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던 비난이 떠올랐다. '네가 잘못한 거야!' 잘못하는 일임을 뻔히 알면서 마스크를 벗었고 친하다고 생각해서 이해해 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차라리 농담처럼 "마스크 좀 써줘. 환기를 하든지" 라고 했더라면 금방 알아들었을 것이다. 수치심을 제대로 느꼈던 건 친구의 말투 때문이었다. 말하는 태도, 나를 대하는 시선이 수치감을 느끼게 했다. 

잘못 했으니 혼자 수습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모임을 마무리할까 생각했지만 그럴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화낼걸 뻔히 알면서 마스크를 벗은 나를 내가  잘못했다고 자책한 목소리가 컸다.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정리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거다. 순간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잠깐 시간이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한 다음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자애명상에서 배운 호흡을 연습햇다. 불편한 감정이 일어날 때 평온하게 진정시키기 위해 '한 번은 나 자신을 위해 들이쉬고, 또 한 번은 상대를 위해 내쉬고' 이렇게 내쉬고 들이쉬는 호흡을 천천히 했다. 격렬하게 화가 올라오는 걸 의식하면서 화가 느껴지는 가슴 사이 명치끝 부분으로 호흡을 보내는 상상을 하면서 숨을 들이 쉬었다. 또 한 번은 바로 앞에 있는 친구를 생각하면서 숨을 내쉬면서 들숨, 날숨을 되풀이했다. 가슴을 최대치로 부풀려 숨을 들이쉬기를 몇 번 되풀이하니까 명치끝에 걸려있던 화가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을 다독거리며 위로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산소를 몸에 불어넣었다. 자극을 받은 그 상황에, 상대 앞에서 양해를 구하고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느낀 감정을 천천히 흘려보내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듯 그 자리를 마무리하고 돌아와 혼자 삭히느라 밤잠 설치고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 호흡하면서 머물렀다. 가슴에 꽉 찼던 불편함과 수치심, 화가 천천히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말할 수 있었다. "마스크 쓰라는 말을 듣고 부끄러웠어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신경 쓰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수치심이 느껴졌어요. 셋 밖에 없고 방같이 독립된 공간이라 잠시 편하게 있고 싶었나봐요.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표현해요"

내 마음에서 일어난 생생한 감정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하려니까 말할 수 있었다.  비난하거나 자책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상대 말을 듣고 내 마음에서 일어난 변화를 전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말했다. 함께 이 과정을 지켜보던 선배 한 분이 "아! 이렇게 말하면 되겠네요. 서로 오해하지 않고 탓하지 않으면서 자기표현을 하는 방법을 이제 알겠어요." 한다. 그런 일로 쪼잔하게 화를 내는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감정을 숨기고 혼자 돌아와 끙끙 앓으며 화를 낸다는 선배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가면  편안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친구는 90세 친정어머니집을 들락거리며 돌봐야해서 코로나 감염에 예민한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서로 입장을 말하고 나니 감정이 스르르 빠진다.

 화난 감정이 표현에 섞이면 상대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린다. 감정을 빼고 평온을 회복한 후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치심을 느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말 들어서 서운하고 속상하구나. 친한 사이라고 느껴서 편하게 행동한 건데.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자신을 위해 호흡할 때 이런 위로를 함께 해주면 감정이 쉽게 편안해진다. 

글을 쓰면서 작가 김승옥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숨길 일도 속일 일도 없다. 모든 일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라고 인정하고 수용하면 언제든지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때 가장 솔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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