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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Nov 28. 2021

치매에 대한 색다른 해석

치매예방, 먹고싶은때먹고 하고싶을때 하기

두 해 전부터 시어머님이 치매를 앓고 계시다. 팔순이 될 때까지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 생일 태어난 시각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총기가 있던 분이시다. 물 없이 오이지를 담으려 할 때 소금, 식초, 설탕 비율이 얼른 떠오르지 않으면 시어머니한테 전화한다. 어디 적어둔 메모를 찾지 않아도 오이지 담는 방법을 알려주시던 분이다. 시어머님이 치매에 걸린 그즈음 평소에 용돈을 모아 만든 목돈을 여동생(이모님)에게 맡겨두었는데 그 돈을 잃게 된 일이 생겼다. 사기는 아니고 친한 여동생에게 맡겼고 잠시 빌려썼는데 그게 잘못된 거다. 평생 자신을 위해 한 푼 써보지 못하고 알뜰하게 모은 돈을 시댁 식구가 아닌 자신의 피붙이에게 잃고 나서 어머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모님은 어머님의 동의를 구한 결정이었다고 하시고 시어머님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이미 저질러진일이니 여동생에게 맡긴 돈을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어 힘들어하셨다. 그 일로 밤잠을 못 자고 먹지 않아서인지 몸무게가 10-15 킬로그램 빠지더니 급속하게 쇠약해지셨다. 그러면서 치매 증상이 시작됐다.  병의 원인이야 뭐 의학적으로 분석하자면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곁에서 지켜보기게 시어머님이 그 일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셨다. 자식들과 남편들에게 할 말이 없어하셨고 특히 아버님이 처제(어머님 여동생)와 왕래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순식간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여동생과 돈 문제로 멀어지게 되면서 어머님 마음에 깊은 외로움과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의 질병은 여러 신체적인, 유전적인 요인들이 있지만 당시 마음 상태에도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된다. 시어머님 자신이 사라지거나 부끄러운 일들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추측을 할 때가 있다. 


시어머님 기억이 날이 갈수록 흐려지는 걸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날들이 늘고 있다. 아들이랑 드라이브 삼아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화장실 다녀올 테니 여기 있으라고 당부하고 5분 만에 돌아왔더니 사라지고 없어서 CCTV를 확인해서 겨우 찾는 일이 일어났다. 아버님이 쓰레기 버리고 마트 잠깐 다녀오겠다고 집에 있으라고 당부하고 다녀오니 집 문이 잠겨있고 어머님이 남편 찾으러 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일을 처음 겪은 가족들은 저마다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고통스럽다.  

시어머님은 한 번도 자식들 흉을 보거나 키우느라 힘들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결혼해서 어쩌면 그렇게 긍정적인 어머님 품성과 인격이 존경스러워 의지가 많이 됐다. 간혹 자식들 효도하라고 저렇게 좋게 말하시나? 속마음을 듣고 싶은데 정말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걸까?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 단점과 부족한 점 흉을 봐줄 때 공감받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남편이 자기가 보기엔 결점이 많은 사람인데 어머님이 자기 자식 자랑을 시종일관하면 불편할 때가 있다. 바른말하기 좋아하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속으로 구시렁거리게 된다.

그런 시어머님이 치매에 걸리시더니 달라지셨다. 시아버님이 하소연하시며 하는 말이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한참 옆에서 있다가 화를 내면서 문을 꽝하고 닫고 들어간다는 거다. 어쩌다 임영웅 트롯가수들 나오는 방송을 보기 시작하면 혼자 박수를 치면서 좋아서 들썩들썩하면서 따라 부르는데 연속극 보려고 다른 채 널르 돌리면 막 뭐라 하면서 TV 리모컨을 손에 꼭 쥐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말을 들던 아들이 "아버지가 했던 행동이랑 똑같네"한다. 아버님 하소연에 내가 덧붙였다. "어머님도 이제 자신이 보고 싶은 TV를 마음대로 보고 싶으신 것 같아요. 어머님이 재미있게 볼 때 아버님이 다른 방으로 가서 보라는 표현 같아요"했더니 어머님이 옆에서 "맞아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한다. 

집에서 나올 때 조그마한 칠판에 먹고 싶은 거, 필요한 물건 있으면 적어 두시라고 했더니 "돈이 많이 드니까 그렇지. 가난해서 돈이 없잖아. 쥐뿔도 돈이 없이 가난하잖아" 하신다. 어머님이 하시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저게 가슴에 담아둔 진심이었을지 모를 텐데. 그 말을 치매가 걸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니까 저렇게 입 밖으로 드러내 말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어머님은 유난히 알뜰하신 분이셨다. 딱 정해진 생활비 안에서 살림하셨고 정해놓은 살림을 살면서 또 저금하신 분이시다. 그런 분에게 여동생에게 맡겼다 잃은 돈은 아마 자신의 인생만큼 소중했겠다 싶다. 

어머님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니 가족들은 이제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날씨 춥기 전에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근교에 드라이브 가서 밥 먹고 차 안에서 이야기 나누고 1박 하고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걸어 다니기를 힘들어하셔서 집으로 돌아갈지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침 먹은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점심을 어떻게 할지 물었다. 아들들은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다며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배 안 고프시죠?" 했더니 아버님은 뭐 그저 그렇다고 하시는데 어머님은 "배고파, 지금 나 배고파"하신다. 정말 배가 고파서 배 고프다고 하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머님 정말 배 고파서 하는 말씀이세요?" 했더니 "배고프다니까, 난 지금 배고파 점심 먹고 싶어" 아주 단호하고 똑부러지게 말한다. 


치매 걸린 시어머님 변화를 지켜보면서 치매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흔히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는 병이 치매라고 하는데 치매 증상 중 겪게 되는 집착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한다. 의심증, 돈, 옷, 보석 집착증, 잠, 음식 등이 여러 종류의 집착 증상으로 나타난다. 시어머님은 돈과 옷, 보석에 대한 집착 증상이 있다. 돈을 꼬깃꼬깃 접어 지갑에 넣고 틈날 때마다 만지작 거리고 세어 본다 한다. 쓰지 않아도 옷 주머니에 꼭 넣어가지고 다닌다. 어머님은 돈이 풍족해서 자신이 입고 싶던 옷과 보석을 마음껏 사고 싶으셨을까? 아끼기만 하고 써보지 못한 돈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동생에게 맡겼고 그 돈을 잃은 탓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여겨서 기억을 지우고 싶으셨을까? 

치매는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누르고 성실하게, 희생하며 산 사람들이 더 잘 걸릴 수 있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친구 친정아버지는 평생 쌀가게를 하면서 자식 6명을 키웠는데 착한 치매에 걸려 하루 반 이상을 잠을 잤다고 한다. 친구 말로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하셔서 착한 치매에 걸리신 게 아닌가 가족들이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충족하며 살아야 할 기본 욕구에 아름다움, 휴식, 신뢰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 어른이 되면 기본 욕구는 먹고사는 문제에 묻힌다. 어른이 되면 직장에서 직장인으로 사느라, 부모가 되면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식으로 도리를 다하느라. 평생 애쓰며 살다가 자신으로 살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자기표현은 자신으로 살아야 할 당연한 권리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누가 해줄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 시어머님의 치매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한 생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을 위해 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말이다. 부모는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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