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자리를 뚫어주듯 몸의 느낌을 표현하도록 한다.
오래전에 본 영상이 떠오른다. 아르메니아 출신 명상 수행자 구르지예프의 춤을 통한 명상치유수행인 무브먼트 워크숍에서 보게 됐다. 한 남자가 동그란 원안에서 계속 맴돈다. 원은 사람 키쯤 되는 지름 넓이이다. 바깥에서 보기에 혼자 놀이를 하나 싶어 자세히 보니 남자는 원 안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원 바깥을 향해 걸어 나오는 듯하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일정한 방향으로 도는 것 같더니 반대로 돈다. 얼굴 표정으로 봐서 원에서 빠져나오려는 것 같은데 출구를 찾지 못해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보인다. 한참 원 안에서 왔다 갔다 고개를 갸윳거리다 지쳤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서 맴돈다. 이 모습을 지나가던 사람이 보더니 다가가서 원을 두 발로 슥슥 지운다. 운동장 같은 흙에 그려져 있던 원이 행인이 발로 슥슥 지우자 지워진다. 드디어 출구가 생긴다. 원 안에서 뱅뱅 돌던 남자는 한 발을 문 바깥으로 내밀어본다. '어라! 원에서 나올 수 있잖아'. 몇 번 원 바깥으로 발을 내딛던 남자는 드디어 출구를 찾았다는 듯 원에서 빠져나온다. 아주 오래된 흑백 영상이었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걸 보면 꽤 의미 있게 본 것 같다. 원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던 사람. 바깥에서 보기에 발로 슥슥 지우고 나오면 될 일을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원 안에 갇혀 뱅글뱅글 돌기만 했을까?
구르지예프 ‘변형의 춤’ 무브먼트는 매 순간 깨어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행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지켜보면서 깨어나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가끔 잘 사는가 싶다가 생각과 감정에 갇혀 꼼짝 못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문을 열고 나갈 생각도 하지 못한다. 몸을 옮겨 산책이라도 나갈 수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텐데. 생각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맴돌고 있을 때 무기력하고 좌절스럽다.
글을 쓰다가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 온통 생각에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엉켜서 한 줄도 쓸 수 없을 때 갇혀있는 나를 누군가 구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문을 열고 나오면 되는데 그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한참 혼자 헤매다 어찌 어찌 가라앉혀 빠져나오고 나서 돌아보면 어이가 없다. 출구는 의외로 가깝게 늘 열려있는데 찾지 못할때가 있다.
사실 깨어있다면 '아 이런, 내가 또 생각에 갇혀있네.' 알아차리고 주변을 둘러본 후 발로 슥슥 원을 지우고 손을 털고 나오면 될 일이다. 깨어있다는 의미는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빠져 있을 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빠져나올 수 있을지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다. 깨어있기가 힘들다.
이럴 때 이렇게 물어봐주면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지금 몸과 마음이 어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 살핀 후 표현할수 있도록 질문해준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관찰하도록 하는 질문이 도움이 된다. 갇힌 원 바깥으로 나와 객관적으로 자신을 살피도록 한다. 잠깐이지만 객관적으로 지금 빠져있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살피고 말로 표현하는 자체가 출구를 찾도록 돕는 일이다. 말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면 답답함도 함께 배출된다. 충분히 표현하도록 한 후 잘 들어주는이른 스스로 출구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말하면서 스스로 갇혀있다고 생각한 고정된 생각의 패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생각이 출구를 찾지 못하면 몸도 갇힌다. 평소 같으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출구를 찾지 못하고 생각에 갇혀있을 때는 문 밖으로 나가기 조차 힘들다. 생각과 감정은 몸을 움직여 다른 분위기 장소로 이동만 해도 된다.
올해 수능시험이 꽤 어려웠던 모양이다. 첫 시험 국어시간 시험지를 받아 들자마자 멘붕이 온 수험생들은 이후 줄줄이 시험을 망친 사례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첫 아이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 두 달 전부터 두문불출하던 지인이 수능 이후 소식이 없다. 독서모임날 몸이 안 좋아 참여가 어렵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속으로 아들이 기대한 결과에 미치지 못했나 싶다. 마음이 쓰여 모임방에 톡을 올렸다. 12월 마무리도 할 겸 차 마시고 수다 떨자고 번개 제안을 했다. 자주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은 지금 상태가 어떨지 짐작이 된다. 이럴 때 메시지를 보내거나 집 밖으로 불러내 말하게 하면 된다. "요즘 어떻게 지내? 그 일이 있고 나서 마음이 쓰였는데 지금은 좀 어때?" 이렇게 물어봐주면 된다. 말하고 나면 숨을 길게 내쉬면서 말한다. "밖에 나와서 얘기하니까 풀려요. 지금 상태가 어떤지 물어봐주고 바깥으로 불러내 줘서 고마워요"
초등시절,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혼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시무룩했는데 엄마한테 들킬까 봐 말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엄마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 간식 먹고 있는데 속으로 속상하고 억울하고 기분이 엉망이다. 아이는 기분을 내색하지 않고 엄마 기분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티가 안 날수 없다. 엄마가 묻는다. "오늘 기분 별로인 것 같은데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우리 아들 기분 별루면 엄마도 별로야. 지금 기분 어때?" 물어봐주면 아이는 금세 눈 주위가 빨개진다. 눈물이 금세 주르륵 흘러내린다. 엄마의 이 말이 아이에게 탈출구다. 그만큼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 말하면서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말하면서 스스로 출구를 찾아간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감정과 새각, 욕구를 말하는 자기표현은 그 자체로 출구 역할을 한다. 때로는 문을 열고 나와 자유로와질 수 있는 현관문 역할을 하고 문을 열어 환기하는 통풍구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