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처방전/ 자신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를 찾아라
제목을 읽고 화를 내는데 진짜 이유가 있고 가짜 이유가 있단 말야?
무슨 소린지 궁금해질 것이다. 나도 그랬다. '모든 화는 화나게 하는 상대의 말, 행동,
태도'가 있다. 상대 잘못이라 비난할 수 있는 자극이 있다. 자녀를 키우면서 습관적으로
매번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반복적인 상황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거의 무의식적
으로 자동 발사되는 화와 분노여서 혼란스러웠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는데도
여지없이 자동발사되는 화를 놓고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화를 자동적이고 습관적으로 내게 하는 상황은 대체로 이랬다.
남편은 휴일에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TV를 튼다.
싸움의 시작은 매번 TV시청 때문에 일어난다. 시간은 대략 11시쯤이 되는데, 특히 길게 소파에 눕거나 소파 앞에 누운 모습을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화가 난다. 남편이 TV를 틀면 책상에 앉아있던 아들이 나와서 슬그머니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TV 시청을 둘러싼 나의 잔소리는 내가 생각해도 도를 지나치는 면이 있다. 한번 화를 내면 잔소리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고장난 라디오에서 잡음이 울려나오듯 자동적으로 나온다. 급기야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보던 TV를 끄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야 조용해진다. 남편과 아들, 둘이 TV를 보고 있는 꼴을 보면 아무 일도 하지않고 빈둥대고 있다는 비난이 내 속에서 멈추질 않는다. 화를 쏟아내고 나서 혼자 생각해 본다. 이게 그렇게 격하게 화 낼 일 인가? 남편과 관계가 깨질 정도로 험한 말이 오간 적도 많다.화를 내고 싶지 않아도 자동으로 습관적으로 화가 나는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됐다. 화 나는 원인을 찾고 싶은마음을 갖고 떠올렸더니, 무의식에 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어린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가 화라는 메세지로 계속 신호를 보낸 것이다.
어린시절 우리 집은 아버지한테 부지런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자식들이 아무 일 하지 않고 넋 놓고 있는걸 싫어했다. 아버지는 자식들한테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댓돌을 뚫는다고 강조하셨다. 집에 놀 거리가 없었다. 공부방도 따로 없었다. 늘 TV를 볼 때 아버지 눈치를 봐야했고 뒹굴뒹굴하고 노는 것 처럼 보이면 야단을 맞았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놀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나에게 TV는 무료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보는 바보상자였다. TV를 보고 낄낄거리고 웃는 꼴을 보면 그렇게 멍청해 보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충분히 놀지 못했던 기억, 마음편하게 TV를 즐길 수 없었던 경험이 자녀를 키우면서 자극됐다.
그러니까 매번 화가 났던 진짜 원인은 TV를 보는 남편과 아들 둘이 아니라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길게 누워 TV 보는 재미를 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었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아련하게 슬픔이 올라왔다.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특집으로 방영되던 만화영화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떠올랐다. 가족들이 큰 대자로 길게 누워서 웃으며 TV를 볼때 사실은 나도 함께 앉아 맘 편하게 보고 싶었다. 마음으로는 TV를 너무나 보고 싶었다. TV를 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 자동적으로 화가 난 이유는 내 무의식에 저장된 아버지의 잔소리였다.
마음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 기억이 아니다. 그저 그렇구나,
내가 TV 보는 장면만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자동발사 된 진짜 이유는 아버지 잔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놀고 싶었는지, 가족끼리 즐겁고 재미있게 TV 앞에서 쉬고 싶었는 지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공감해 주는 일 이었다. 따뜻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이었다.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가 내는 화가 자신이 경험했던 어린시절 채워지지 못한 욕구에서 비롯되는지 인식할 때 정말 비명이 절로 질러진다. 어린 시절 해결되지 못했던 욕구들을 자녀들에게 쏟아붓는 자신을 직면했을 때 부끄러웠다. 잘 받아주고 견뎌준 남편과 아이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다시한번 강조한다. 화를 진짜 내는 이유 찾아라! 분노는 굉장히 위장을 잘한다.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내 아이가 나를 화나게 해, 한 두번이 아니라 매번 화를 돋우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어! 원수가 따로 없어 라고 평소 말하고 있다면 자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이걸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화를 내면서 나도 죽이고 가족들을 죽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