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고요했다. "하고 싶은 말 마지막으로 해보세요"라는 판사의 말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10초 가까이 적막이 흐르다 말이 겨우 나왔다. "너무 떨려서.."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더 작아 보였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숙인 여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을 골랐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유혹이 다시 찾아올 때가 있어요?" 판사가 못 참고 먼저 물었따.
"음..솔직히 생각이 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느끼려고 하고 상담도 받습니다."
"일상이 즐겁지만은 않은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거죠?"
"음..상담도 받고 노력하겠습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여자가 변호사와 몇 마디를 나눈 뒤 법원을 나섰다. 흡연실에 서있던 한무리 남자들이 처다보는 게 느껴진다. 걸어가려다 법원 앞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 탄다. 하늘은 흐렸고 날이 찼다. 비는 오지 않았다. 택시에선 흔한 라디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다시 꺼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페이지를 올려봤다. 표정이 괜히 찡그려졌다.
집에 도착해서 잠깐 침대에 누웠다. 본가에 내려갔다 재판이 많다는 핑계로 다시 서울로 도망치듯 올라왔다. 아무래도 답답한 걸 참지 못했다. 엄마가 말려도 못들은 척 나왔다. "상담 받고 하려면 서울에 있어야 해!" 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소리쳤다. 딸 인생이 망해버렸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지. 나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부모라고 다 아나. 마약 전과 있는 30대 여자.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유튜브로 무한도전을 틀어 키득거렸다. "그래 이런 게 일상의 즐거움이지." 소소한 재미를 찾기 위해선 확실한 걸 즐겨야 한다. 한 회차가 끝나고 봤던 에피소드를 계속 본다. 새로운 걸 시도하기 무서워. 실패하고 방황할 순 없어. 모르던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어. 그 새끼도 이러다 만난 건데. 그 놈이 마약 전과도 많고 했던 걸 알 수도 없었다. 일단 만나고 보니 그런 놈이었다. 주사를 찔렀을 때 떨렸다. 주사를 맞고 하면 더 좋다. 이전 삶은 기억이 안 난다. 몇 시간 동안 전율한다. 갑자기 슬퍼진다.
텔레그램 어플은 지워버렸다. 머리에 생각나는 대로 검색어를 구글에 써봤다. 인스턴트 채팅창이 뜨는 걸 몰랐다. 이런 저런 말을 하면 금방 약을 구할 수 있을 텐데.
이미 9개월동안 약을 끊고 있었다. 정신과도 다녔고 상담도 받는다고. 오늘 이렇게 된 건 순전히 그 질문 때문이야. 즐겁지만은 않으니까. 그게 인생이니까. 그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즐겁지만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