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사람들 14
비대면으로 살던 세상을 기억하시나요?
정말 얼마 안 되었네요.
2019년 12월.
세상은 문득 멈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코로나 19라는 겪어보지 않은 질병이 전 세계를 덮었습니다.
모르는 질병에 대한 대응책이 나올 때까지 우리도 각자의 집에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국에 평생교육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나라의 방침에 따라 함께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도 직장인도 집에 갇힌 세상에서 우리는 발 빠르게 돌파구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ZOOM을 통한 비대면 교육이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ZOOM 활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강사들에게 필요하다면 가르쳐 드렸습니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에게도 가르쳐 드렸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이 각자의 마음까지 파랗게 멍들이기 전에 시민들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줌이라는 비대면 도구가 익숙하게 준비가 되었고 우리는 어느 기관보다 먼저 ZOOM교육으로 평생학습을 이어나갑니다.
다른 기관들이 하는 PPT 화면으로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뿐만 아니라 커피도 내리고, 클래식도 듣고, 그림도 그리고, 요가도 했습니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지만 온라인이라는 귀한 공간에서 우리는 학습자와 다양한 학습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성의 전화 상담을 받았습니다.
저희 어머니께 수업에 참여할 기회를 주실 수 있나요?
아직도 줌 사용법을 모르시는 분이 많이 계셨습니다.
당연히 가르쳐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평생 일만 하시다가 이제 은퇴하시고 좀 쉬시라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네요.
따님에게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걸걸한 목소리의 어머니께서는 시장에서 긴 세월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해온 사연을 말씀하시며 이제는 당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배우고 싶었지만 결혼해서 먹고 사느라고 멈춰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자식들은 후회하지 않게 잘 가르쳐 놓겠다는 결심으로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시장으로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자식들도 결혼을 시켰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당신의 평생소원이던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하나둘 줌 사용법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하얗게 센 머리를 단정하게 쪽지듯 묶은 머리 스타일이 완고해 보이셨지만 하나씩 둘씩 익혀가며 수줍게 웃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소녀 같았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신다는 <정원 가꾸기>와 <시 쓰기> 수업을 수강신청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매주 줌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사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시지만 보조교사처럼 줌 사용이 불편한 분을 도와 드리고, 오작동을 일으키는 분의 음소거도 해드리며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돕는 일이 우리의 일이었습니다.
첫 시간에 화면 속의 그분은 하얗게 쪽진 머리는 간데없고 귀여운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계셔서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개강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머리를 싹둑 자르셨다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항상 수업시간이 되면 화면 속에서도 열심인 그분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다음 해는 코로나 시국이 완화되어 대면 교육을 하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캘리그래피도 배우시고, 숲체험 프로그램도 들으시고, 연극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까맣게 염색한 단발머리에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가시는 모습은 이제 평생교육의 선배님처럼 느껴집니다. 처음 평생교육에 입문하는 신입생을 만나면 고학년 언니처럼 나서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십니다.
젊은 엄마들이 주로 수강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웬일이신가 물었더니 수줍게 웃으며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보여주십니다.
제 딸이 손녀를 낳았어요!
요즘 엄마들처럼 세련된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 유아교육 관련 수강신청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열릴 때마다 그분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올해도 어느 프로그램에서 단발머리 그녀를 꼭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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