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홍 Jan 01. 2022

당신은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을 가려주던 긴 밤이 지나고

새의 발자국만 남은 천장을 바라보다가

움켜쥔 수도꼭지에서 콸콸 새는 빗물

타일 사이에 맺힌 습기와

입속으로 역류하는 슬픔과

아래로 흘러내리는 처음들이

마른 나를 적시곤 하였습니다


각진 거울의 표면을 만질 때

미끌거리는 촉감은 슬퍼집니다

닿을 수 없는 사람과의 거리가

이렇게 가깝고 딱딱해서야

투명을 검게 칠한 활자들로

틈을 메워보려 힘을 주어도

당신은 벌써 먼 곳의 냇물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갑니다


문을 잠그니 공중에 떠오르는 방울들

당신이 꽁꽁 숨겼던 마음과

우리가 내내 다투던 사랑이

이제서야 내 손등 위로 떨어집니다


우리는 염증처럼

아물지 않은 딱지를 긁어내며

서로를 아파하기만 했습니다


아리듯 떠오르는 당신은

천장 아래 수분이 되어

호흡이 되어

축축해진 미안을 묻히게 합니다


빈 화병에 가득 담아

꽃이라 부르고 싶은 이 밤

창문을 검게 칠해도

눈치 없이 밝아지는


당신은 긴 밤에 가려져 있던

슬픈 아침이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