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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홍 Jan 04. 2022

아침 일기



꿈을 꿨다.

중간에 몇 번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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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얼마 되지 않은  느껴져서 다시 눈을 감았다. 잠들기 전엔 친구와 통화를  시간 동안 했다. 그녀는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라. 그녀와의 대화엔  죽어버린 그녀의 동생이 스며들어 있다. 이불속은 굉장히 따뜻한데도 방공기가 차가운지 자는 내내 오한처럼 시렸다. 꿈을 꾸다가 깨고  깼다. 잠에서  기색 하나 없이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생생히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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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꾸던 꿈이 있다. 이런 걸 악몽이라 하겠지. 꿈과 꿈 사이를 비집는 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상이 눈앞에서 휘몰아치는 어두운 배경의 꿈인데, 종잡을 수 없는 속도감과 울리는 음성을 포함한다. 똑같진 않지만 비유하자면 lsd 영상과 얼핏 비슷하다. 사람도 무엇도 없는 그 꿈을 나는 왜 그토록 반복적으로 자주 꾸는 걸까? 꿈에서 꿈으로 이동하는 꿈일까? 아이 돈 노.. 깨고 나면 꿈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꿈속에 들른 몇몇의 친구들과 미련을 떠올린다. 그리곤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컴컴하고 복잡한 미지의 공간이 떠오른다. 조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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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깼을 땐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새벽 늦게 잠들어서 6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일어나서 보니까 오후 6시로 설정을 해놨더라. 저녁에 일어나서 뭐 하려고.. 어처구니가 없었고. 중요한 일정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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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항 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상태. 아마 계획보다 늦게 일어나서 그런 거겠지. 아니면 내 무의식이 불쌍하게만 느껴지는 꿈을 꿔서 그럴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쓸데없는 자기 연민 진짜 극혐 하는데 눈 뜨자마자 내가 조금 불쌍했다. 그렇지만 별개로 하루의 시작은 역시나 기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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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무언가가 자주 별개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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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할머니들이 보고 싶다. 너무 뜨거워서 따가울 정도로 데운 방에 할머니들이랑 우리들 삼삼오오 앉아서 며칠만 있고 싶다. 늙어가는 당신 피부 냄새를 맡으며 '이 냄새 버스에서도 맡은 적 있는데. 손 봐, 우리 할머니 참 작아졌다. 할머니 어릴 때 사진이 보고 싶어. 내 나이였을 때 예뻤겠다. 할머니한테는 할머니가 있었어? 이런 나도 곧 할머니가 되겠지.' 별별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앞에 있는 티브이를 보고 싶다. 작게 벌어지는 웃음소리를 몰래 듣고 녹음하고 싶다. 아마 하고 싶은 말들은 평생 남아있겠다. 다시 듣고 싶은 말들이 평생 맴도는 것처럼.​​



아무튼 내가 가장 크게 되뇌는 건 누구에게든 언제든 표현을 부지런히 하기로. 미움을 사랑을 감사를 놓치지 않고 알리기로. 모든 게 흩어지기 전에 건네기로 한다. 무뚝뚝한 내 성격을 탓하기엔 이미 핑계가 소용없는 어른이 되었다. 잠깐의 쑥스러움을 못 이기면 앞으로 더 부끄러워질 거야.

​​​


이제 우리 할머니들도 우리처럼 다 만났겠지.​​



문득 십 년 전 일기를 펼쳐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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