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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May 24. 2023

피아노 치는 날

특별한 아이들 2

내가 원장이 되고 나서 전공반 아이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입시로 합격 또는 불합격, 다른 새로운 분야로. 절대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은 새로운 전공반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을 억지로 앉히고 잡고 싶지가 않다. 강사 시절에는 그렇게도 사탕발림으로 잘 꼬셔댔으면서 지금은 아이들한테 제일 행복한 걸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참 장사를 못하는 인간이다,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전공반이자, 내가 끝끝내 억지로 붙잡았던 아이 이야기다. 정말 지겹게 힘들게 했던 학생. 얘는 분명 크게 되긴 할 것이다.


그 나이 또래라면 으레 있는 허세를 잔뜩 부리는 유치원 남자아이. 귀가 좋아서 절대로 악보를 안 보려던 아이. 자기는 피아니스트 안 하고 싶다며 연습실에서 울다가도 먹을 것 한입에 넘어가던 순수한 아이. 멋있다는 칭찬 한 번이면 잘난 척 연주를 꽤 멋있게 하던 아이. 알람처럼 주기적으로 이름을 불러야 연습하던 아이. 우리 학원에서 얘 이름 모르는 학생&학부모가 없던 아이.


어떤 아이도 절대로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 아이가 유일하고 마지막일 것이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재능도 있었지만 예민함이 컸다. 이 아이는 피아노가 아니어도 꼭 음악가가 될 것 같았다. 작곡이나 노래에도 소질이 있지만 피아노 연주하는 소리 톤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이의 예민함은 일반적인 아이들과의 것 과는 달랐다.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육 체계에서는 적응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한없이 자유롭게 두기에는 아이의 자제력이 너무나도 야생마 같다고나 할까? 어쨌든 큰 선생님과도 부모님과도 크게 한바탕을 치르고(?) 도망을 갔었다. 굳이 내가 잡아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이 아까워 입시만 치르기로 꼬시고 데려왔다. 무슨 초등학생 사춘기가 이렇게 세게 오는 건지.


 다른 터치 없이 나랑만 자기 음악을 만들어 보겠단다. 그래 1년도 안되는데 해보자!

입시곡이 발표가 나고 1순위인 학교가 아닌 2순위 학교를 선택했다. 그냥 2순위 학교 지정곡이 더 멋있어서. 아이의 기분을 맞추며 말도 안 되는 칭찬세례와 적당한 회유. 여간해서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 아이라 온갖 방법을 총 동원했었다. 우스갯소리로 남편보다 어려운 남자라며... 부모님과 최대한 부딪치지 않게 하려 주말마다 입시평가나 콩쿠르도 직접 데려갔다. 주말도 없이 파김치가 되어서 입시를 치렀다. 결과는 합격.


아무도 크게 고마워하지는 않았다. 워낙 잘난 아이였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냥 나에게는 해방감? 졸업 전 아이는 떠났다. 흔한 작별인사도 없이 훌쩍.


다행히 학교에 적응도 잘하고 잘 지낸다고 했다. 철이 든 건 아니겠지만 편입준비를 해서 1순위 학교에 편입도 성공했다. 거의 2년 만에 연락 와서는 열심히 자랑을 했다. 딴에는 나에게 자랑할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신나게 자랑한 아이는 어색하게도 목소리도 말투도 많이 변해있었다. 아마 키도 훨씬 많이 컸겠지? 부모님보다도 더 가깝게 그렇게도 많이 붙어있던 사이인데. 무슨 헤어진 연인처럼 이상하다. 뭔가 시원하면서도 약간 아련한 느낌?


이왕이면 내가 가르친 공들인 아이, 멀리멀리 떠나갔어도 아주 크게 되었으면 좋겠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도 하고,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넌 기억 못 해도 내가 기억하니까. 침 흘리며 연습하던 어린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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