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입시.. 아주 할 말이 많다. 무슨 중학교 입시가 대학생들이 치는 곡들을 지정곡으로 내놓는지. 애들을 아주 잡는다. 열정과다 선생님인 나는 내가 입시를 할 때 보다도 더 힘이 들었다.
미리 말하자면 자랑이 아닌 실패담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할까?
너무나도 이쁜 여학생 둘과 함께였다. 왜 그리도 얘들이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6살 때부터 본 정인가? 예중을 목표로 몇 년을 준비를 했다. 주말이 없이 명절이 없이, 약간의 연습시간이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몇 년을 매일 본 아이들이다. 연습실에서 떡볶이도 시켜 먹고 치킨도 시켜 먹고 놀고 싶은 주말에는 아침 일찍 연습시간 채우고 놀러도 같이 가고.... 뭐.. 거의 딸들이었다. 아니 나에겐 친구였다.
행복할 것 만 같았던(?) 우리에게도 시련이 닥쳤다. 입시를 치르기 위한 순항 중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일반 학원이었던 우리는 집합금지 대상이었고, 입시라는 특수한 상황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돈을 받는 레슨이 아닌 연습실로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내가 없이 아이와 엄마가 짝으로 한 팀씩 시간별로 연습하는 것도 안된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집에서 길어야 1~2시간 외에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입시평가나 콩쿠르도 줄줄이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상황에 연습이 부족한 아이들이 나가니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어쩌다 오프라인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순두부 멘털이 되어 실력발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우리끼리 무대연습도 해보고, 한 번이라도 입시평가를 더 나가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는 최대한 연습했다. 아이들이 지치지 않게 불안해하지 않게 파이팅을 해 주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한 고비씩 넘기다 보니 실기날이 되었다. 우리에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둘이 다른 날에 실기 조가 배정되었다. 한 명은 첫째 날 아침. 와.... 새벽에 5시도 안돼서 손을 풀어주러 갔었다. 하필 잠이 많은 아이는 아무리 몇 시간을 해도 잠이 깨지 않았다. 퉁퉁 부은 얼굴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너무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아이는 다음날 오후. 멘털이 유독 약한 아이는 오후가 되니 긴장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시험은 끝이 났다.
결과는 둘 다 낙방. 아이들과 고생한 시간들과 억울함이 뒤섞여 눈물이 났다. 내가 아닌 다른 선생님을 만났다면 좋은 결과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더 능력 있는 선생님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번에는 오히려 아이들이 위로해 주었다. 선생님이 왜 미안해하냐고 우린 후련하다고. 입시 한방에 아이들이 훌쩍 커 버렸다. 아이들은 일반 중학교에 진학하였고, 오히려 그 뒤로 피아노를 더 즐겼다. 입시곡이라는 무서운 틀에 있는 곡들이 아닌 본인이 하고 싶은 곡들을 가끔 치면서. 그땐 아이들을 원하는 학교에 합격시켜 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자료와 영상들을 보았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예중에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멋있게 적응했겠지만 지금보다는 덜 행복하게 피아노를 강제로 치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