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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Dec 17. 2020

성격 급한 아내와 슬기롭게 살아가는 법

슬기로운 결혼생활

아내는 추진력이 좋다. 계획과 함께 바로 실행에 옮긴다. 어떨 때는 계획보다 실행이 앞서기도 한다. 좋게 말해 추진력과 실행력이 좋은 거고,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성격이 급하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아내는 성격이 급하다. 기다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걸음걸이도 빠르고 행동도 잽싸다. 주차 후 차에서 내리려는 마음이 급해 안전벨트를 풀지 않고 내리려다 “윽!”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시동을 끄지 않고 내리려 한 적도 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한 후 30분 뒤에 도착이라고 하면 20분이 지난 후부터 왜 안 오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전화해보라고 재촉한다. 그러면 나는 “5분만 더 기다려보자”라고 회유한다. 그렇게 5분의 시간이 지나면 귀신같이 알고 또다시 확인 전화를 권유한다. 아니 강요한다. 그러면 1분의 시간을 더 벌기 위해 다시 토론이 이어진다. 


어김없이 토론에서 씁쓸한 패배를 맛본 나는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한다. 거의 다 왔다는 답과 함께 10초 뒤 '딩동~' 벨소리가 들린다. 이 또한 여러 차례다. 아내는 “아, 조금만 참을걸”이라고 하지만 며칠 뒤 배달 음식을 시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 일쑤다.


운전을 할 때도 급한 성향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나 신호 대기 이후 꼼지락거리다 출발하지 않는 앞차에게는 자비 없는 클락션 한 방이 들어가고야 만다.


둘이서 대화를 할 때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위험하다. 내 대답이 늦거나 답이 없고 얼버무리면 “응?”, “응?”, “뭐라고?”, “말하기 싫어?”와 같은 여러 물음표가 한꺼번에 내 이목구비를 향해 날아 들어온다. 자신의 반응이 늦으면서 상대방에게 빠른 결정과 대답을 강요한다면 이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겠지만 아내는 항상 칼같이 대답을 한다. 사소하고 작은 물음에도 언제나 신기할 정도로 대답을 잘한다. 그래서 더욱 반론을 펼칠 수가 없다.


성격 급한 아내와 함께 산 지 어느덧 4년이 지나니 어느 정도 그의 성격에 맞춰 대응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집안 공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선빵'이다. 아내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주차 후 아내가 안전벨트를 풀지 않고 내리려 하기 전에 “안전벨트 풀고 내리자”라고 한 마디 해주면 된다. 배달 음식 주문 후에는 “주문한 지 30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안 오네. 전화해볼까? 아니다. 오늘 날씨도 춥고 길도 미끄러우니까 안전하게 오려면 조금 늦을 수도 있겠다. 5분만 더 기다려볼까?”라고 말하니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줬다.


그래도 아내가 조금만 더 차분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차례 얘기도 해보고 대화도 했지만 급한 성격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중년의 남녀 연예인들이 각자의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상대를 바꾸기보다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한 패널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아내도 내 성격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애초부터 아내의 급한 성격을 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고 무의미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정보가 부족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란다. 

물론 게으른 것과 성격 급한 것은 극과 극이지만 아내의 급한 성격을 인정하고 장점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느긋한 나의 성격에 만약 아내까지 여유로운 성격이었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제시간에 타지 못할 것이고, 마트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장 보러 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2년 전, 아내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바로 '성격 급한 부자들'이라는 책이다. 표지에 적힌 글들이 모두 아내의 성격과 비슷했다. 답답한 거 참지 못하고, 결정이 빠르고, 솔직하고, 수긍을 잘하고, 쫄지 않고, 변화를 즐기고, 호기심이 많은 것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급한 성격을 지닌 이들이 많다는 내용 때문에 아내가 보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나도 아내도 그 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빠른 시일 내에 부자가 되면 좋겠지만 서로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다이내믹하다. 아내의 급한 행동으로 벌이지는 기막힌 에피소드에 대해 같이 얘기하면서 박장대소한다. 생각을 바꾸니 같은 상황에서도 화가 아닌 웃음과 걱정이 먼저 피어오른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즐겁게 살아가는 지금, 어느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다.


결혼한 상대를 '배우자'라고 한다. 평생 같이 살면서 상대방을 거울삼아 끊임없이 배우라는 뜻일런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아내를 통해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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