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크나인 Nov 25. 2020

아내의 사무실에서 함께 지냅니다

임대료는 아내가 냅니다.

지난 9월 퇴사 이후 웬만하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꺾일 줄 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19의 영향도 있지만 어디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해서다.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집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좋았다. 사실 회사에 다닐 때도 주말이면 온종일 집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당분간은 마음껏 읽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굳이 밖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면 청소기를 들고 집안 곳곳을 누빈다. 이틀에 한번 꼴로는 반려견 '설이'와 산책을 나간다. 그럼에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조금 더 늦게 자고 조금 더 늦게 일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소를 마치면 집에서 간단히 운동을 한다. 평일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라테스민턴'을 했는데 최근 찬 바람이 불고 코로나 19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하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는 혼자 팔 굽혀 펴기와 스쿼트를 하며 내 몸 돌보기에 열을 올린다. 20개도 채 하지 못했던 팔 굽혀 펴기는 이제 쉬지 않고 30개 이상은 거뜬히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집에 혼자 있어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 대형마트에서 한아름 장만한 밀키트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인터넷 서핑과 뉴스 검색을 하다 오후 1시쯤이 돼서야 비로소 컴퓨터 앞에 앉는다.


생각날 때마다 휴대폰에 메모해두었던 내용을 보면서 쓸 내용을 정리한다. 글을 쓰다 마음에 들지 않아 날려버린 것도 꽤 된다. 휴지통에 들어간 미완성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고민도 한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책을 펼친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책에 적힌 글자도 마치 다른 나라 말 같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며 매일 글을 쓰고자 다짐했지만 그래도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나름의 사업 아이템도 정리해보고 간헐적으로 주식 창도 열어본다. 매도 타이밍을 놓친 여러 종목들이 파란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내 눈만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뭔지 모를 자괴감에 주식 창을 닫고 분노의 기지개를 켠다. 다시 펼쳐뒀던 책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아내의 퇴근 시간이다. 퇴사한 후 처음 몇 날 며칠은 내 세상 같았지만 두 달여가 지나니 조금씩 좀이 쑤셔 온다. 그러던 차에 아내가 창업을 했고 사무실을 얻었다.

 



아내는 1인 기업이라 사무실 임대는 부담이 돼 '공유 오피스'를 알아봤다. 집에서 가까운 판교 테크노밸리 쪽을 먼저 살폈지만 세금이나 관리 비용이 높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탄으로 눈을 돌렸다. 아내는 '공유 오피스' 두 곳 정도를 눈여겨봐 뒀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처음 가본 '공유 오피스'는 다양했다. 1인실부터 3인실까지 크기도 다양했고 생각보다 시설도 깔끔했다. 별도의 미팅룸도 있었고 공용공간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잘 들어오면서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는 덥지 않은 그리고 소음이 없는 곳이 어디인지 계속 둘러봤다. 1인실은 좁게 느껴졌고 3인실은 너무 컸다.



2인실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아내에게 말했다.

“2인실은 우리 둘이 같이 출근해서 당신은 여기서 일하고 나는 저기서 책 보고 글 써도 되겠다”

“아~ 그래도 되겠네. 그럼 2인실로 하자~”

아내의 긍정적인 화답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내는 두 명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을 최종적으로 택했고 곧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책상과 의자는 각각 2개씩 있었고 넓은 서랍장도 2개가 마련돼 있었다. 매월 정해진 임대료 외에는 전기세나 수도세 등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아 좋았다. 공용공간에는 커피를 비롯한 다과가 세팅돼 있었다. 각 호실별 무료 와이파이와 프린트, 복사도 무료였다. 7층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고즈넉하니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을 정한 아내는 법인 인감을 만들고 법무사를 통해 정관과 명부를 만들었다. 사업자등록증도 내고 법인의 통장과 신용카드를 개설하는 등 일사천리로 추진해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출근해 같이 점심을 먹고 손을 잡고 퇴근한다. 단, 매일은 아니다. 반려견 '설이'의 산책과 각자만의 시간을 위해 월, 수, 금요일만 함께 하기로 했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자석처럼 붙어 있으면 마주 보던 N극과 S극 중 언젠가는 한쪽이 등을 돌려 서로를 밀어낼 수도 있겠다는 예견도 한 몫 했다.


비록 아내의 사무실에 얹혀 지내며 글을 쓰고 있지만 아내의 키보드 치는 소리,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일'하는 아내가 뿌듯하다. 누군가 옆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 있을 때보다 글이 잘 써지는 느낌도 든다. 책도 더 잘 읽힌다. 같이 출근하는 날에 아내가 거래처를 들렀다 출근해야 하면 대신 운전도 해준다. 얼마 전에는 급한 건이 있어 시흥과 김포를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 나는 운전을 했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통화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데 바빴다.


“운전해줘서 고마워~ 오빠가 운전을 해주니까 내가 옆에서 편안히 일할 수 있었어. 오빠 덕분에 급한 일을 잘 마무리했어~ 정말 고마워~”라고 아내는 말했다.


솔직히 운전을 하면서 '아, 지금 하나라도 글을 더 써야 하는데...', '내가 지금 운전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한 미소와 함께 아내가 거듭 전한 고마움에 잡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불평보다 아내를 위해 조금 더 부지런한 내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같은 사무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 우리 부부는 지금껏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 서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 결혼했고 아내는 퇴사한 뒤 창업했다. 나는 퇴사 이후 '백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아내의 사무실에 얹혀 지내고 있다. 우리 부부의 앞날에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아내의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면서 백수 남편은 황금빛 미래를 꿈꾼다. 머지않아 어엿한 대표가 되어 무상으로 사무실 한쪽을 내어준 아내에게 임대료의 몇 배를 얹어 고마움을 전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새로운 활력소, 라테스민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