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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콜드 Mar 17. 2022

할머니에게 신상을 사드리면 생기는 일

반응이 신상

이 글이 평소 '잘해야지'하며 생각만 하는 분에게,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할머니에게 신상을 사드리면 생기는 일. 결론부터 말하면, 신상이 신상이 아니게 됩니다. 즉, 신상 취급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 그럼, '밥통'부터 얘기해볼게요.



신상 전기밥솥 구매의 건


족히 10년은 됐던, (구) 하얀 밥솥. 할머니는 그 밥솥을 "밥통"이라 일컬었다. 나와 할머니는 그 밥솥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엥? 무슨 밥솥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것이리라. 그 누군가를 위해, 우리의 희로애락 히스토리 먼저 말해본다.


그 당시, 할머니와 나는 주로 밥 먹을 때 가장 많은 대화를 했다(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오늘 뭐하셨냐?", "난 오늘 누구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까 깔깔 웃더라", "밖에는 나갔다 오셨냐" 등의 그날의 일과를 주로 얘기한다. 또 어느 날은 밥 먹으면서 서로 서운한 마음에 싸우기도 했고, 혹은 서로를 위해주기도 했다. 그런 나날 안에 항상 밥솥(밥)이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 저 흰 밥통이 말썽을 부렸다. 밥시간이 충분히 지났는 데도 불구하고, 소식이 없는가 하면, 밥이 되더라도 밥맛이 예전과 많이 달랐다.


이런이런. 이 녀석도 나이가 많이 들어 몸에 여러 고장이 난 거 같았다.


확신이 들면 바로 추진하는 나는, 할머니를 위해 신상 밥솥을 얼른 구매했다. 택배가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벌써부터 기분이 부풀어 있었다.


퇴근하고 집 앞에 택배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나는, 박스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말했다.


"뭐야 그거?"


/"어 이거 밥솥이야, 밥솥. 할머니"


"뭐가 그렇게 커?"


'뭐가 그렇게 커', 초고령자 할머니와 오래 산 나는, 저 말이 사건의 발단을 알리는 말이리라 눈치챘다.


"이게 뭐가 커? 박스만 큰 거야"


내가 답했다. 말하지만, 정말 박스만 컸다.


박스를 열고 신상 밥솥을 조심스레 꺼내 드는데 분명, 시야 범위 180도 안에 할머니가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어필했다.


"이야- 이거 예쁘게도 생겼네"


/"예쁘긴, 먼저 거랑 별 차이도 없네"


"차이가 없다니 할머니. 이 봐봐 안에도 그렇고 밖에도 세련됐잖아"


/"난 모르겠어"


이후에도 할머니는 타치고, 터치고 뭐가 이렇게 쓰기 어렵냐, 뭐 이렇게 비싼 걸 샀냐, 노인네 쓰기 너무 어렵다, 다시 환불해라 원래 있던 거 쓰게, 할 줄을 모르겠다, 밥을 못해먹겠다 등의 밥솥 신상보다 더 신상 같은 표현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며칠 뒤, (내가 좋다 좋다 해서 그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밥맛이 확실히 좋다, 비싼 건 다르다 등의 만족의 말을 한 할머니다.


(글을 쓰며 확인해보니, (구) 밥통은 버리셨다고 한다..)



안녕하십니까!

정수기입니다.


14년 넘도록, 할머니 집에는 정수기가 없었다. 내가 불편해서 정수기 렌탈을 신청한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그 아래로 할머니가 뜨거운 물을 드실 때마다 수돗물을 커피포트로 끓이신 점, 밥이나 찌개 등을 준비하실 때도 수돗물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고 신청한 이유도 있다.


그렇게 정수기를 신청하고, 기사님이 와서 정수기를 설치하고 간 날까지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뭔 돈이 있다고 정수기를 들여놔"

"쓸데없이 뭐하러 사"

"다시 가져가라고 해"


내 입장에서는 할머니를 위해서 사드린 건데, 저렇게 말씀하시니 참 섭섭할 따름이었다. 한두 번? 에이, 열댓 번의 설득의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위와 비슷한 대답이었다.


참,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몇 달이 지난 요즘이다. 요즘 밥이든 찌개든 요리를 할 때 무조건 정수기를 이용하신다. 무엇보다, 우리 집의 또 다른 할머니, 15살 피나(요키푸/여)에게 물을 줄 때에도 정수기를 이용하신다. 예전에 내가 시켜먹던 물로 피나에게 물을 줄 때와 다소, 아니 많이 다른 반응이다.


(다만, 아직(?) 뜨거운 물은 커피포트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신다)



얼마 전에 온,

신상 실내자전거입니다만..?


기존의 실내자전거, 이 친구도 위 (구)"흰색밥통"처럼 희로애락을 같이한 친구다. 그만큼 오래됐다. 녀석도 흰색밥통처럼 나이가 들어, 최근 본인이 고장 났음을 강하게 피알하고는 했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에게 제안을 했다. "할머니, 할머니도 바꿀 생각 있다고 했으니까, 이번에 새로 한 번 바꾸자고. 반반씩 내는 거야" 할머니는 내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다음 날, 회사에 있는데, 할머니 전화가 왔다.


"응 밥은 먹었어? 점심?"


/"예 먹었죠, 할머니는?"


"나도 먹었어. 지금 요 앞에 아줌마(근처 할머니 친구)랑 나온 거야. 근데 그 자전거 괜찮은 거 산 거야? 예쁜 거 샀어?"


/"아이 잘 샀지 그럼. 그게 몇 천 명 넘게 산 거야 할머니. 다 알아보고 내가 샀어. 그리고 작은 거나 접어지는 뭐 그런 거 싼 거 사면, 소음도 나고 운동도 안돼"


"알았어"



주문한 실내자전거가 왔다. 난 30여분의 사투 끝에 조립을 마쳤다. 조립을 마칠 때쯤 할머니가 나오더니, 괜찮은 듯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원래 꺼는 어디에 갖다 버리던지, 저기 팔든지 해"


나는 알았다고 했고,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 다음 날, 또 사건이 발생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웨이트를 하고 자전거를 타려는데 할머니가 말했다.


"그게 뭘 그렇게 큰 걸 샀어! 티브이에 보니까 요렇게 요만한 거 있고 하던데"


/"에이 이게 뭐가 커, 그리고 작은 거 사면 운동도 안되고 소음이 심하다니까?"


"그게 젊은 애들 거 아니냐 그러더라 아줌마(요양보호사 선생님)가"


/"젊은 애들이라니.. 이거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다 타, 할머니"


"시끄러!!!"


/(...)


당황스러움과 섭섭함이 교차한 나는 할머니에게 답했다.


"손자한테 시끄러워가 뭐야. 그 시끄럽다고 하지 좀 마셔"


/"그럼 시끄러워요. 시끄러우세요 해?"


(웃음)



난 할머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 할머니가 밥솥이랑, 정수기처럼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아, 온수매트 구매 건도 있다. 전기매트-> 온수매트 교체 썰은 반응이 좋으면 다음에 쓰도록 하겠다)


둘, 반반 구매, 아니 공동구매는 물 건너갔구나..


이후, 난 할머니의 기분을 달래고자, 할머니 기분을 좋게 만드는 필살기를 썼다.

바로 '설거지'.


"들어갑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저렇게 외치며 할머니 방에 다시 자전거를 들여다 놓았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그날은 좋게 끝이 났다.



공동구매는 성립되지 않아도 괜찮다.

부디, 할머니가 하루빨리 저 자전거에 익숙해져서 다리 근력을 키워 지금보다 더 아프지는 않길 하는 바람이다.


'시끄러워' 사건 이후, 굳게 닫힌 할머니의 방문


그 방문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니 '시연'을 하는 손자


이 글을 쓰고, 다시금 신상 자전거를 타며 할머니께 어필하려는

작가 리틀콜드 씀.






"이봐, 젊은이" 그 이후, 할머니 둘과 살며 관찰하고, 돌보며, 쓰는 글 중, '돌봄'에 관련한 글입니다. 글을 통해 보다 가깝고, 가장 소중한 주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관련 매거진 연재 중(아래)

https://brunch.co.kr/magazine/2b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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