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의 기억
2024년 12월 3일 밤 나는 경기도 동탄에서 부서 회식 2 차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11시경, 지인에게 카톡이 왔다.
“계엄령 이거 뭐야? 갑자기?”
기사를 찾아본 나는 중얼거렸다.
“하... 와이프를 너무 사랑하나 보네...”
놀랍기보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몇 달 전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계엄령’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다른 카톡방에서는 국회로 군과 경찰이 모여든다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비상계엄도 충격적이지만, 국회를 군경으로 봉쇄한다는 건 21세기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맥주잔을 비우면서, 불편함이 꿈틀거렸다. 여기서 국회는 멀고, 밤은 깊고, 상황은 아직 불확실했다. 회식자리의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11시 반, 양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 택시를 탔다. 경부 고속도로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내 마음 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대표가 시민들에게 국회로 모여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택시는 곧 양재 나들목으로 들어설 참이었다. 이대로 돌아가 잠들면, 아침엔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까? 나는 시민인가, 방관자인가?
“기사님, 국회 앞으로 가주세요.”
“네? 진짜요?”
젊은 기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위험할 텐데…”
“그래도 가봐야죠.”
“네, 하지만 통제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하니, 사거리에서는 경찰들이 차량을 돌리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군 차량과 사이카들이 시동을 켠 채 줄지어 서 있었고,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연락해 둔 선배를 만나 국회 정문 앞으로 향했다. 이미 수십 명이 모여 “비상계엄 철폐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급하게 혼자 온 사람들, 친구 손에 이끌려 나온 사람들… 얼굴에는 긴장과 결의가 섞여 있었다.
그때, 검은 밤하늘을 가르며 군 헬기 세 대가 날아왔다. 날렵한 기체는 곧장 국회 안뜰에 착륙했고, 무장한 군인들이 내리는 모습이 유튜브 생중계로 전해졌다.
선배는 나를 보며 얘기했다.
“총소리가 나면 바로 달리는 거다?”
“에이 총을 쏘겠어요 설마…”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알 수 없었다. 21세기 한국에서 비상계엄선포도 현실이 된 상황이었다. 군인들의 진입을 알게 된 사람들의 구호 소리는 더욱 커졌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다. 국회 앞에 길게 주차된 군 차량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덮칠 것만 같았다.
새벽 1시, 국회 안에서 마침내 의사 정족수를 채우고 계엄 해제 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들은 환호했지만, 어처구니없음과 허탈함이 뒤섞였다.
“내일부터는 용산으로 가야겠네.”
“그래야죠.”
계엄은 해제됐지만, 뒤늦게 모여드는 사람들로 국회 앞은 점점 붐볐다. 늦은 밤, 각자의 경계를 넘어 '시민'으로 이곳에 온 얼굴들이 반가웠다. 서로의 눈빛에서 안도와 고마움을 읽었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새 구호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와 선배는 발걸음을 돌렸다.
택시를 잡으려 걸어가다 문득 깨달았다. 그날 내가 발견한 건, 계엄 해제라는 결과가 아니었다. 이 일상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낯설고, 동시에 너무도 소중한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