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회상

노스트라다무스와 매트릭스 사이에서

by 김정민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헌책방에는 참고서, 잡지, 만화, 소설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있었다. 나치가 아직도 남극 지하에서 UFO를 띄우고 있다는 이야기 라든가, 외계인을 숭배하는 사이언톨로지나 라엘리안에 관한 서적, 심지어 마인드컨트롤로 남의 마음을 조종하는 법까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들이지만, 초등학생 때는 제법 진지하게 읽었다. 한 번은, 스위스 농부가 플레이아데스 성운에서 온 외계인을 만난 이야기를 읽고는 겨울 밤 장독대에 올라 플레이아데스 성운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이 빠져들었던 건 바로 그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었다. 1999년 7월, 앙골모아의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내용. 나는 80년대 말에 이미 이 예언을 접했고, 그때부터 조용히 1999년 세기말을 카운트다운하고 있었다. 그 해, 나는 대학교에서 4학년을 마친 뒤 휴학 중이었다. 카츄샤에 지원한답시고 토익책을 들고 다녔지만, 동아리방에서 죽치고 노래 부르고, 족구나 하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변명 같지만, 세기말에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건 어딘가 납득되지 않았다. 1999년에는 여러 사이비 종교들이 종말을 노래하며 들썩이고 있었고, Y2K 밀레니엄 버그로 전 세계 시스템이 셧다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뉴스의 단골 소재였다.


학교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IMF로 서둘러 군대에 갔던 선배나, 친구들이 하나 둘 복학하고 있었지만, 경제 위기의 여파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들은 수중에 돈이 모자라기 일쑤였다. 누군가 기숙사 식권이 남았다고 하면 몰려가 먹기도 하고, 동아리 뒷풀이도 술값이 모자라 학교 교정에서 과자 안주에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세기말 역시 어수선했다. IMF 외환위기 후 실직자와 노숙자는 거리에 넘쳐났고,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라는 생경한 단어는 북상해오는 태풍처럼 우리 사이에 회자되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는 돈이 돌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학내엔 투자 동아리나 벤처 창업 동아리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정부나 기업들도 학생들의 창업과 투자를 북돋기 시작했다.


그런 어수선함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새천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에게 1999년은 단순히 달력의 마지막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순된 지난 세기가 저물고, 미지의 미래가 기다리는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세상의 본질을 묻는 세 편의 영화와 마주쳤다.


하나는, 〈인스팅트〉 였다. 야생에서 살아온 인류학자가 문명에 포획되어 정신병자로 취급을 받는 이야기. 마지막에 야생의 숲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인간이 잃어버린 야성에 대해 묻고, 현대 문명이 감옥이 아닌지,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우리의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또 하나는, 〈다크시티〉. 밤마다 도시의 구조가 바뀌고, 기억이 조작되는 세계.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세계의 규칙을 깨고 진실에 도달하려 한다. 기억이 정체성을 구성한다면, 그것이 인위적으로 조작될 때 우리는 누구인가? 그 질문은 단순한 SF 설정이 아니라, IMF 이후의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 던져진 질문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매트릭스〉 였다. 모든 것이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전복적인 상상. 기계가 통제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묻는 이 영화는, 현실 그 자체를 ‘정교하게 통제된 거짓’으로 선언했다. 어쩌면 세기말의 불안에 대한 가장 완벽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20세기는 정말 우리의 것이었을까? 우리는, 육체에서 정신까지 모든 것을 통제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젠 도시 전설이 돼 버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기다렸던 나는 이 세 편의 영화가 20세기의 마지막을 의미심장하게, 상징적으로 장식했다고 생각했다.


새천년 새해 타종 행사가 있던 종각엔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HOT, SES, 김건모 같은 당대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있었고,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결국 종말은 없었다. 달력 한 장이 뜯겨 나가듯, 새로운 세기는 싱겁게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나는 묘하게 공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평범한 새천년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매트릭스>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세기말'은 새로운 세계로 편입되는 개인의 삶 속에서 조용히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오래된 가치나 신념을 내려놓아야 했고 누군가는 삶의 기반을 잃고 다시 세워야 했다. 수년 뒤 벌어진 수도권 뉴타운 광풍과 용산 참사가 보여주듯, 새천년의 새로운 시대와 가치는 뒤에 남겨놓은 이들을 돌아보지 않았고, 남겨진 자리엔 급히 다른 풍경이 들어섰다.


2000년에는 닷컴 버블이 일었고, 클론이 야광봉을 들고 '초련'을 불렀으며, 사람들은 박찬호의 퍼펙트 게임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 환호 속에서 세기말 영화들이 던졌던 서늘한 질문은 쉬이 잊혔다. 빠르게 삶의 터전이 붕괴되고 기억이 소멸되는 이 공간, 수입된 가치가 강요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진정한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