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기억, 빈자의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은평구 응암동
어머니가 사시는 은평구 신사역 앞 아파트에선 응암동 일대 백련산과 불광천이 보인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 동네에서 살았다. 8, 90년 대 응암동 백련산 아래는 판잣집과 연립이 공존하던 곳이었다. 당시 학급엔 가난한 아이들이 절반, 중산층 아이들이 절반정도 섞여 너무 위화감을 주지 않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초등학생 때 살던 우리 집은 백련산을 오르는 어귀에 있었다. 집 앞을 다니는 마을버스조차 없던 그 시절 하굣길엔 방향이 같은 친구 몇과 경사가 높은 그 길을 씩씩거리며 올랐다. 어머니는 재봉 공장에 일하시느라 대개 집은 비어있었고 나는 상위에 차려진 밥을 먹고 마루에 누워 창문에 보이는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 열쇠를 잃어버린 날은 해가 질 때까지 집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우리 집 아래층에는 무당 아주머니가 살았고, 위층에는 할머니가 손주들과 살았다. 백련산에 공비(共匪)가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주말이면 어머니와 형을 따라가 산에서 약수를 받고, 아카시아를 따고, 쑥을 캐기도 했다.
지금은 백련산 꼭대기까지 자이며 롯데 같은 이름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쓰레기 악취로 골칫거리였던 인근의 난지도는 월드컵 경기장과 하늘공원으로 탈바꿈했고, 신사역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불광천은 산책로로 정비되어 카페와 고깃집이 들어서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시절 백련산 밑 판잣집에 살던 이들과, 악취 나던 불광천 옆 낡은 연립주택에 살던 이들, 그들의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
종로구 숭인동
8살까지는 종로구 숭인동 골목 안, 축대 위 집에 살았다. 겨울엔 하도 외풍이 심해서 어린 내 손은 자고 일어나면 얼어 있었고 어머니는 밤마다 약을 바른 손 위에 비닐봉지를 씌워주었다. 한 번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온 가족의 놀림에 단신 가출을 하였으나 마침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 축대 밑 계단은 그날따라 까마득했다. 옆집 쪽방에 살던 한 살 어린 현준이는 내가 대충 그린 자동차 그림을 받고 좋아했다. 아버지는 청계천에서 작은 자동차 부품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날 데리고 다녀오곤 하셨다.
다시 찾은 이 동네는 시간의 흔적이 적다. 동네 어귀엔 재개발이 취소되었다고 플래카드가 붙어있고, 현준이와 뛰어다니던 골목은 이제 비좁아 보인다. 동대문의 동쪽. 요즘 핫 플레이스인 동묘의 위쪽. 시다들이 살던, 스타벅스는 없는 동네.
남가좌동 모래내
가좌역 근처, 모래내 시장에서 명지대로 이어지는 골목 어딘가 내가 다니던 교회가 있었다. 만년 개척 교회가 그렇듯 잦은 이사를 했고, 모래내 시장 안 골목 지하로 옮긴 교회는 겨울엔 추웠고, 여름엔 눅눅했다. 거기서 교회 형, 누나들에게 노래와 기타를 배웠다. 몇 안 되는 교회 형들은 대부분 공고를 다녔는데 옷에선 희미한 담배냄새가 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우리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트리 전구를 내리곤 했다.
지금은 그 일대가 깨끗하게 밀리고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 있다. 크리스마스 새벽송을 돌며 낡은 봉고차로 오르내리던 좁은 언덕길은 사라졌다. 그 새벽에 눈 비비며 나와주던 신도들과 그들의 아이들. 초라했던 골목들과 함께, 모두 어디로 갔을까.
종로구 북정마을
북적이는 삼청동을 지나 와룡공원을 오르는 길에, 혜화동으로 향하는 성곽 내리막 길을 타다가 옆으로 빠지면 낯선 북정마을을 만난다. 왠지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길가엔 할머니들이 나와 앉아 있다.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 인파로 넘치는 화려한 삼청동, 혜화동과는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곳. 낮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은 마치 오랜 세월 쌓인 낙엽처럼 고요하다. 집집마다 누군가의 삶이 켜켜이 포개어져 작은 이야기들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허물어진 담장과 기울어진 지붕, 그 곁을 지키는 고풍스러운 나무는 버티고 있는 듯 못내 위태롭다. 골목 어딘가 한용운의 심우장이 있었지만, 마침 휴관이라 아쉽지만 들어가 보지 못했다.
내가 살던 동네들을 포함해 예전의 서울의 고지대에는 이런 집들과 골목들이 많았다. 그 자리에 올려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서울 안에서 빈민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것은 분명하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골목의 어귀에 서서 나의 유년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뒤로하더라도, 증식하는 도시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모든 기억들이 소리 없이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낯선 거리에서 익숙한 얼굴을 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내가 누구였는지’ 되묻는 일은 무력하다. 도시의 낡은 지도를 들고 선 경계인으로서, 도시는 어떻게 사람을 끌어들이고 배출했는지, 그 흐름에서 누가 남겨지고, 누가 사라졌는지, 기억이 증발된 낯선 길 위에서 나는 그것을 끝내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