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건너며
이따금 한강을 건널 때면, 척 맨지오니의 재즈 연주곡 ‘Feel So Good’을 떠올린다. 정확히 말하면, 한강을 건널 때마다 그 곡을 들었다던 어떤 사람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군대에서 만난 나이 많은 형이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입대 뒤 몇 달을 군 병원에서 보냈다. 하지만 육군 의무 규정에 없는 병명을 가진 그를 군은 전역시킬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병상에서 받은 일병 계급장을 단 채 우리 부대로 전입했다. 영민한 사람이었지만, 다리가 아파 절뚝거렸고, 군경험은 없이 나이만 많았던 그는 그곳에서 '쓸모'없는 존재였다. 쓸모없는 인력에겐 배려 따윈 없는 그곳에서 그는 늘 뒤에 있거나, 열외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피하고 외면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언제나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묘하게도 유머가 있었다. 힘겨운 군생활이었지만 그 형의 투정을 들으며, 때론 농담을 들으며, 나도 군생활을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사실 내 다리는 멀쩡하거든. 내가 전역할 때 위병소 앞에서 똑바로 걸어 나가는 걸 보라고." 그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언급하며 종종 그렇게 말했다. 처음엔 우스갯소리로 들었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공간과 그 기묘한 질서를 비웃듯, 그가 멀쩡하게 걸어 나간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나는 상상했다.
내가 있던 부대엔 조직적인 구타가 있었다. 후방 부대이고 실탄을 휴대하지 않았기에 사병들 간 기강 해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건 오래된 '쌍팔년도식' 논리였다. 취침 점호가 끝나면 휴게실에 모여 그날의 행동들에 대한 '결산'이라는 걸 했고, 주먹과 발길질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뒤에는 오히려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등병들은 알록달록 노랗게 멍든 몸을 간부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간부들도 알면서 묵인한다는 것이 우리의 중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은 내무반 후임이 첫 휴가를 나가 구타당한 사실을 신고했다. 친척이 장성이라고 했고, 부대는 발칵 뒤집혔다. 부대에서는 이등병과 일병, 병장을 따로 방에 모아놓고 구체적인 진술서를 쓰게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구타 사실을 정확히 적은 건 나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로 구타는 멈췄지만 나는 부대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더욱이 신고를 한 후임을 중심으로 새로운 내부반이 구성되었으며 나는 (보나마나) 그 내부반이었다. 구타보다 더한 생활이 시작됐다. 선임들은 말을 걸지 않고 뒤에서 수군댔고, 같이 구타를 당하던 동기나 후임들마저 표정을 관리하며 나와 우리 내부반 인원을 피했다. 구타 뒤에 마음만은 편했던 잠은 사라지고 구타 없는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한 두 달 뒤 뒤숭숭한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부대에선 체육행사를 열었다. 축구, 족구, 농구 각 종목 1 등 팀에겐 즉시 4 박 5 일 포상 휴가가 주어졌고 나는 고민 끝에 내무반 대표로 족구에 출전했다. 하루라도 빨리 부대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노래와 족구만 했던 나는 이 종목만큼은 자신 있었다. 경기 중반까지 똥볼을 차대던 선임을 제치고 공격에 나섰고, 나를 미워하던 이들에게 보란 듯이 공을 차 넘겼다. 그리고 연승을 차지해 부대 1 등으로 우리는 포상 휴가를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대는 전보다 느슨해졌다. 선임 앞에서 웃는 후임들이 늘었고, 한대 뿐인 공중전화 앞에서 이등병들이 눈치보지 않고 줄을 섰다. 나는 구타가 벌어지던 휴게실에서 기타를 치며 민중가요를 불렀다. 이래서 구타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왔지만, 이미 바뀐 분위기를 돌이킬 순 없었다. 나는 여전히 외톨이였지만 부끄러울 것도 후회될 일도 없었다. 가끔 그 형을 찾아 투정을 들어주며 서로의 전역날을 손꼽았다. 그리고 형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그가 전역 날 위병소를 어떻게 걸어 나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곡을 들으면 그 형의 목소리와 웃음이 함께 떠오른다. 그에게 그 곡과 유머는, 부조리한 삶을 견디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한강을 건널 때마다 그 곡 ‘Feel So Good’을 떠올린다. 열망과 좌절의 한복판 서울에서 무심히 흐르는 한강을 건너며, 살아간다는 건 살아남는다는 것인지 그저 버틴다는 것인지 자문하다 문득, Feel So Good. 어둠 속에서도 우리만의 노래를 흥얼거릴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빛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조금은 흥겹게, 삶의 자세를 고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