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en Syndrome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영원한 소년”이라는 개념을 접했다. 학생 때 머리는 좋은 편이었고 인기도 있어 선택의 가능성이 많았지만,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도 끝내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나를 향해 곧장 날아온 화살처럼 느껴졌다. 내 삶이 누군가의 개념에 의해 한순간 포획된 기분이었다.
“영원한 소년”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1983년 심리학자 댄 케일리(Dan Kiley)가 발표한 피터팬 신드롬(Peter Pan Syndrome)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성인이 된 뒤에도 선택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며,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준비 중’이라는 감각에 머무는 상태. 나는 그 설명 속에서 낯설 만큼 익숙한 내 그림자를 보았다.
나는 한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해왔다. 꾸준히 무언가를 했고, 끝내 버텨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선택의 기로에서 계속 머뭇거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쌓여온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여전히 “나는 준비 중이다”라는 감각. 겉으로는 성인의 역할을 다 해온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호한 이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40대 후반 1인 생활자. 내 안에는 언젠가 가능성을 실현할 거라는 소년의 그림자가 늘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 시대가 함께 겪고 있는 세대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 이상 과거 세대가 밟아온 안정적인 성장의 계단을 보장하지 않는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결혼, 내 집 마련, 안정된 직장에서의 승진 같은 전통적인 ‘성인의 이정표’는 더욱 불확실 해졌다. 성인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회적 비용은 치솟았고, 많은 이들이 출발선에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조차 꾸지 않게 됐다. 동시에 평생직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끝없는 자기계발과 유연한 적응만이 요구된다. 하나의 성취에 안주하는 대신, 끊임없이 다음 가능성을 탐색해야 하는 '영원한 준비 상태'가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그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내가 성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목표들이 과연 현실적인 선택지인지, 아니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통과해야 할 일종의 의례인지 자꾸만 의문이 든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무엇을 선택해야만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호해진 시대다. 게다가 이 사회가 제시하는 성인의 덕목과 가치들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선다. 끝내 동의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늙은 소년’의 상태로 유예시켜왔는지도 모른다. 이 끝없는 대기 상태야말로, 내가 ‘영원한 소년’이라는 말에 쉽게 포획되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영원한 소년’은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사회의 속도에 동조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속도로 걷고자 하는 저항이자,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자 하는 생존 전략은 아닐까. 다만 탐색의 기회마다 머뭇거리는 자신이 스스로도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내 안의 소년은 나를 지연시켰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기도 했다. 노래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세상과 스스로를 의심하며 바라보게 만든 것도 결국 그 소년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기준으로는 멈춰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 안을 돌아보면 나는 늘 다른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걸어왔다. 아직은 모른다. 내가 멈춰 있었는지, 아니면 내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걸어왔는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계속 나를 탐색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영원한 소년’이라는 말에 포획되는 대신, 내가 살아내고 싶은 삶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