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警戒)라는 경계(境界)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6 개월, 탄핵 이후 맞이한 오늘, 대선이 있었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변이 없는 한 이재명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나의 한 지인은 진보 성향이지만, 이재명을 '거칠고', '위험한' 인물로 여긴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찍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결코 그를 대통령으로 적극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언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그의 가족사, 전과 이력, 살아온 생의 예외성 등이 종합적으로 어떤 불안한 이미지를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흔한 반응이지만, 나는 그 지점 너머에 이재명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 사회 일부가 갖고 있는 '경계'의 감정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이념보다는 성향, 더 나아가 계급적 감수성에 가깝다. '결이 다른 사람에 대한 불편함'이자, '자신의 질서와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한 본능적 경계감' 이 감정은 중산층과 진보 내부에서도 미묘한 차이로 작동하며, 때로는 진영보다 더 날카로운 선을 긋는 것 같다.
그 친구는 "이탄희 같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기꺼이 뽑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둘 다 개혁 성향이지만, 대중이 받아들이는 인상은 분명히 다르다. 이탄희는 ‘정제된 도덕’, 이재명은 ‘거친 정의’로 인식된다. 이는 단순한 정책의 차이라기보다, 정치적 스타일과 정서적 위계에 대한 사회의 반응 차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이탄희 의원의 이력을 길게 나열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개혁이라는 공통점 외에 삶의 궤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명의 진폭이 꽤 다르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정말 '거칠고, 위험한' 인물일까? 나로서는 어느 쪽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대개 그가 정의를 위해 싸워온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고, 주류 질서에 저항해 온 결과가 ‘전복적’이라는 이미지로 덧칠 되었다면, 그 덧칠 안쪽을 들여다보려는 유권자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더 나은 세상으로 건너가려면, 벽을 깨야 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공화국에서 대통령은 그 벽을 향해 머리를 부딪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재명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의 삶에서 보여온 꺼지지 않는 불길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 정치란 바로 그 불길이 필요한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닥쳐오는 일이니까.
국가의 통치행위에서, 대통령은 순간순간 자신의 선의와 신념, 방향성을 도전 받는다. 그때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능력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기술도, 깔끔한 매너도 아니다. 그 순간에도 타오를 수 있는 내면의 불꽃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재명이 그 불꽃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내면에 있는 '경계'를 내가 대신 넘을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경계가 논리나 이성보다 ‘자신이 살아온 결’에 따른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그것이 대통령의 자격을 판단하는 데 있어 과연 적절한 기준인지, 한 번 돌아봐주면 어떨지.
"두고 보라구."
그 친구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