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경계

나를 찾아가는 길

by 김정민

오랫동안 의식하며 살아온 것 같다. - 정체성, 책임감, 가족, 규범, 질서, 그리고 이른바 '상식'이라는 이름의 것들을. 그런 경계들은 나를 길들이고, 혈관과 근육 속에서 속삭였고, 때로는 나의 껍데기가 되어 숨 막히게 만들었다. 그 길들임과 압박은 내 살아온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고, 지금 내가 사는 도시와 사람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다른 벽 안에 갇혀 사는 ‘경계인간’ 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며 조금씩 쌓여가던 내 안의 불편함은 경계의 존재를 의식하게 했고, 부정하고 거부하려 할 때마다 오히려 나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사회 생활에서 거부의 몸짓을 하면 침묵 속에 이방인이 되곤 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며 무덤덤한 척, 무기력하지 않은 척, 당연하지 않은 일에도 끄덕이며, 조금 더 예민할 뿐이라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게 내 감각을 무시하고 보이는 풍경들을 외면하며 남들이 향하는 중심을 향해 걷고 있었지만, 먼저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마음도 그 뒤를 따라 무너졌다. 대학시절 원형탈모가 생긴 이후, 사회생활에서 두 번의 갑상선 암이 찾아왔고 유일하게 나를 위로하던 노래를 잃었다. 몇 년 전부터는 불안과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 흔들림 속에서 나를 다시 붙잡아준 건 독서와 글쓰기였다. 처음엔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 뒤엔 그 감각들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결국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지나온 삶을 되짚으며 알게 됐다. 내가 넘고 싶었던 경계는 벽이자, 동시에 이정표였다는 걸. 그 경계를 오래 들여다보면서 내 안의 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고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가치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밖으로는, 세상의 바깥으로 밀려나 힘없이 스러져간 이들을 비로소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앞에서 체념하며 고개를 돌렸던 순간들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기억들도 결국엔 나를 이루는 이정표가 됐다.


경계는 더이상 탈출해야 할 감옥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시작된 장소가 되었다. 이 길 위엔 이정표들이 있고, 이제 침묵 대신 내 문장이 있다. 이 길의 이름은 ‘경계’다. 나는 여전히 외롭고,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며, 미완성인 존재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가두어지고 가려져 있던 기억과 풍경을 글로 더듬어가자, 내가 더 사랑할 나와 더 이해할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견디는 나’에서 ‘표현하는 나’로, ‘밖을 동경하던 나’에서 ‘바깥을 응시하는 나’로. 나는 여전히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이제 그 느림조차 나의 속도임을 안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경계는 지금 어떤 풍경을 지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