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우주의 끝까지 닿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어떤 유체처럼 고요한 우주를 유영하듯 조용히 나아가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알게 되었다. 말이 닿지 않는 곳은 먼 우주가 아니라, 우리의 주변, 기억과 기억 사이, 말과 말 사이의 틈에 있었다.
말은 때론 우리를 규정하고 원하는 만큼 무언가를 감추고 가둘 수 있다. 언어의 마법을 동경했지만, 언어의 폭력성과 소외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달까. 그리고 그 소외는 내 안에도,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경계에도 스며 있다. 왼손에도, 학교로 향하는 길목에도, 군대와 회사에도, 숨가쁜 시대의 변화에도, 주류 미디어와 질서 정연한 광장에도…. 그 소외의 기억들, 폭력의 흔적들. 내가 확인해온 그 경계들을 다시 나만의 언어로 담아보고 싶었다.
이 책에 담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경계 위를 서성이던 나의 흔적들이고 아직은 흐릿하고 불완전한 조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조각들 위에서 당신의 기억이 잠시 머물렀기를, 당신만의 소외와 경계의 풍경을 떠올렸기를 바란다.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걷지만,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닮아 있을지 모른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의 삶 속 경계 앞에서, 이 글이 잠시 함께 걷는 친구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