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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알쫑알 대는 사람 Aug 01. 2023

짤려 본 적 있나요?

“짤렸어.”


모처럼 어두워지기 전, 퇴근을 하려던 가벼운 발걸음이 갑자기 묵직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없이 가볍게 일으켰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고 찬찬히 읽어 내려가 본다. 머리를 잘랐다 거나 혹은 잘났다는 핀잔 이라든가 혹시 다른 의미는 아닌가 싶지만, 이리저리 봐도 선명한 글자. 속된 말로 잘렸단다. 오랜 공백기를 거쳐 가까스로 입사한 회사에서 이제 좋은 선배들을 만났다며 제 나름대로의 열심히를 실현 중이었는데, 매출이 잘 안 나온다 걱정했더니 결국 이렇게 됐단다.


“뭐 먹고살지?”


잠깐의 정적만 찾아오면 ‘툭’ 하고 튀어나오는 진심 어린 물음. 한 달 버는 돈으로 그다음 한 달 사는 건 매한 가지인 너도 나도 월급쟁이. 결국 오랜만에 동료들과 치킨에 맥주나 한 잔 가볍게 하려던 걸음을 돌려 두툼한 삼겹살과 소주 한 병 사이에 두고 친구와 마주한다. 때깔 좋은 삼겹살은 냄새는 물론 그림마저도 맛있게 익어가지만, 젓가락은 여전히 바닥에 가지런하다.


“OOO님은 저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소식을 전해 듣던 그 순간을 언젠가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들어 봤음 직한 대사를 따라 하는 목소리에 입맛이 쓰다. 에라이. 잘 다니던 대기업을 갑자기 뛰쳐나와 꽤 오랜 기간 방황하다 이제야 정착해야겠다 싶었는데 회사가 망했다며 웃는다. 웃음이 지금 나오나 싶지만, 운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철옹성 같이 단단하고 커 보이는 회사지만, 은근히 망하기 쉬운 게 또 회사더라.


때마침 떠오르는 기억 하나. 아무도 모르지만 딱 한 번 공중분해 되본 적이 있다. 나도. 지금도 그렇지만 훨씬 더 겁 없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보면 된다며 신나게 살던 때였다. 근무 환경도 복지도 뭐 하나 빼놓을 것 없는 IT 기업을 다니던 중 뜻 맞는 선배들을 따라 회사를 차렸었다. 엄밀히 말하면, 선배들이 알아서 끌어온 투자금으로 5명이서 사무실 하나에 옹기종이 모여 좌충우돌하던 시기였다. 안정적인 회사 두고 뭐 하러 사서 고생이 냐하던 다른 선배들의 만류에 ‘재밌잖아요.’라는 겁 없는 답 하나 남기고 떠났었다. 일단 아침 비행기를 타면 늦은 밤까지 평균 15개 내외의 미팅을 쪼개서 하고 줄다리기 협상만 수십 번 하기도 부지기수인 매일을 살면서도 즐거웠던 시기였다. 3개월을 버티면, 6개월을 버티고, 6개월을 버티면 1년을 버틸 수 있다는 흔한 스타트업의 생존 법칙처럼 4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수익도 나기 시작하면서 더 큰 꿈을 꾸던 시기, 돌연 투자사에서 투자 중단을 선언했었다. 그렇게 어언 1여 년 동안 발굴한 파트너사와는 이별을, 직접 운영하던 서비스를 종료하고 우리 모두도 그렇게 공중 분해 됐다.


마지막을 얘기했던 그 순간 모두의 ’ 황당함’과 ‘먹고살 걱정’이 가득했던 얼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별을 먼저 결심하고 전하는 사람이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나 모두 당혹스럽고 너덜너덜해지는 순간이긴 매한가지. 그나마 나 하나 책임지면 되는 나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선배, 이제 막 결혼한 선배들에 비하면. TV에서 보면 훨씬 나이 드신 아빠 뻘의 부장님들만 겪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안 겪어도 될 일을 굳이 20대 젊은 시절에 사서에 겪었었다. 언젠가 주위의 누군가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아무도 모르게 내가 먼저 겪어 봤으니 어른스럽게 잘 위로해 주겠 노라 했던 당시의 다짐이라던가 혹은 우리 스스로만 책임지면 되는 상황에서 겪었으니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위안이 하나도 안될 말들이 빠르게 스쳐 가지만 입을 '꾹' 다문다. 20대 시절 우리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무게와 지금의 우리 스스로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그 무게가 얼마나 대단하게 다른 것인지 몸소 느끼고 있으니. 위로는 더더욱 가당치 않기에 조용히 잔만 부딪혀 본다. 앞 접시에 고기나 ‘툭’ 던져 주며. 이런 날은 그저 입은 다물고 먹는 게 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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