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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알쫑알 대는 사람 May 22. 2023

살림은 아무나 하나

베란다부터 방까지 창문이란 온갖 창문은 다 열어젖힌다. '역시 머리카락이나 집먼지'엔 청소기지 하며, 청소기를 '한판' 돌리고 나서는 비장한 마음으로 걸레를 꺼내든다. 걸레질은 청소기를 돌리는 것보다 한 두어 배쯤은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법. 청소기가 매일 먹는 '쌀밥' 같은 느낌이라면, 걸레질은 특별한 날 뜸 들이고 오랜 시간 준비해서 먹는 '돌솥밥'의 느낌이랄까? 버튼 하나만 켠 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청소기와 달리 걸레질은 손이 많이 간다.  우선 '조물조물' 빨아서 '꽈악' 짠 뒤, 걸렛대에 꽂아 팔에 잔뜩 힘을 준 채 구석구석을 꼼꼼히 훔친다. 청소기가 다 소화 못한 먼지는 없는지도 매의 눈으로 살핀다. 그뿐인가. 다 닦은 뒤에는 꼬질꼬질 해진 걸레를 다시 '쪼물쪼물' 빨아서 잘 펴서 말리기 까지가 코스다. 적고 보니 기본적으로 두어 배의 노력이 더 들어간다. 덕분에 걸레질은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전 날에만 한다. 대표님의 결재 직전에 더욱 혼심을 다해 보고를 준비하듯이!   


"뽀득뽀득"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좋아서 라는 이유와 넓지 않은 집이지만 걸레질까지 하고 나면 고새 이마에 땀 방울이 맺히고 힘들어서 라는 핑계로 거실에 대자로 눕는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 싶은 찰나, 베란다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택배 박스가 눈에 걸린다. 무슨 택배 박스가 이렇게 많았더라. 뭐가 들어서 배달됐는지도 기억도 안 나는데!   


"끄응"


절로 입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택배 박스는 거침없이 뜯어서 태초의 전개도 형태가 될 때까지 뜯고 펼치고 접는다. 이제 이것만 버리면, 진짜 끝이다! 




매주 목요일 퇴근 후의 루틴이 이렇게 된 지는 꽤 됐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정성 가득한 메뉴들로 차려지는 '다이닝' 서비스, 깨끗하게 세탁 후 다림질까지 되어 옷걸이에 '촥촥' 세팅되던 '세탁' 서비스,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들어와도 깨끗한 공간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던 5성급 호텔 서비스가 중단된 지 어언 9개월 차. 엄마와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주말 모녀'가 되면서부터다. 


퇴근 후에는 제 한 몸 씻고, 먹고 자고만 하던 투숙객 딸은 갓 태어난 조카 돌봐 주러 떠난 엄마 덕분에 이제야 살림에 손을 보태본다. 반강제로. 평소라면 소파에 흉하게 널브러져서 과감하게 먹었을 뻥튀기도 두 번, 세 번 고민하고서야 먹을지 말지를 결정한다. '우걱우걱' 먹을 때는 행복하지만, 먹고 난 후 바닥에 떨어진 잔재들을 또 치우려면 그것 또한 일이니까. 빨래는 꼭 종류별로 빨래 바구니에 미리 분리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빨래는 그날그날 종류별로 분리해 담는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퇴근 후 문을 열면 다시 도루묵이 되는 엄청난 마법. 시간은 벌써 밤 11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거실 바닥을 다시 구르다 결국 몸을 일으켜, 분리수거를 버리러 나선다. 


"이게 뭐람"


한 손에 빈 박스, 다른 한 손에 PET 병과 빈 맥주 캔들을 바리바리 들고 문을 나서는데 또 발길을 붙들리고 만다. 눈과 비가 반복된 덕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현관이 발목을 잡는다. 이번엔. 결국 양손에 바리바리 들었던 짐은 내려 두고 다시 걸레를 집어 든다.


"에라이" 




회사 일은 퇴근이라도 있지, 살림은 끝이 없다. 회사 일은 월급이라도 주지, 살림은 돈도 안 주는데 일은 엄청 많다. 주말 오후에 같이 집에 있을 때면 쉬지 않고 쓸고 닦던 엄마를 늘 정신없다 하던 딸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사정이 결국 이해가 되고 마는 순간이다.


살림은 아무나 하나. 


"어무니~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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