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나는 엄마랑 둘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나에게 내가 그 희귀병에 걸렸을 시기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그때 무너지는 모습, 약한 모습을 어린 나에게 많이 보여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정말 많이 놀랐다. 전혀 기억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팠던 기억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고, 그때의 나는 병원 가는 걸 정말 좋아했다. 병원 가는 날은 나에게 소풍 가는 날이었다. 환자를 한 명 한 명 오래오래 보시는 좋은 의사 선생님이었던 내 담당 선생님 덕에 우리는 한 번 진료를 받는 데 정말 오랫동안 대기를 해야 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와 혜화역 근처에 있는 맛집을 데리고 다녔고 예쁜 카페를 데리고 다니며 맛있는 케이크와 음료를 사주었다. 매일 새로운데 맛있는 음식과 공간들을 마주하는 나는 너무 재밌고 행복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으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문구점에 가서 예쁜 스티커들을 사줬다. 그러면 나는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한테 엄마가 사줬다며 그 예쁜 스티커들을 한 장 한 장 보여주며 자랑하곤 했다.
아팠던 기억은 이미 휘발되고 재밌고 행복한 기억들만 남았던 탓에 나는 엄마가 약한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기억 속 그때의 엄마는 누구보다 강한 엄마였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나를 데리고 서울대학교병원에 갔으며 혹여나 내가 병원 가는 걸 무서워하고 싫어할까 봐 소풍처럼 코스를 짜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그 무서운 주삿바늘이 내 무릎뼈를 찔러 아파도 울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행복하게 웃으며 병원에 다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