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자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진심으로 대하는 선생님 담당 환자였기 때문에 아침부터 병원에 가 접수를 해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병원에 가는 시간대는 항상 출근 시간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뚝였던 나를 엄마는 자리가 나면 무조건 먼저 앉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할머니가 해맑게 지하철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엄마한테 뭐라고 했다. 대충 자리도 없는데 왜 어린애를 여기 앉히냐는 느낌이었다. 그때 엄마는 그 할머니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다. 그 할머니는 어린애가 어쩌다가 그런 병에 걸렸냐며 나와 엄마를 토닥여줬다.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은 여기까지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기억을 엄마한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너무 서러웠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아마 그 한 마디에 터진 눈물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어린 딸의 해맑음을 지켜주기 위해 감췄던 서러움, 무서움, 두려움이 겹겹이 쌓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봤자 그때 엄마 나이는 고작 30대 중반이었으니까. 아프고 어린 나를 지켜내기엔 아직 엄마도 많이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나한테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너무 큰 부담과 두려움을 마주한 게 안쓰러운데 그때 나한테 엄마는 불치병도 치료해 줄 수 있는 히어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