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끝났지만, 여운은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서 배운 것들

by 빛담

그렇게 ‘잠시만 교토’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에게 일본에서 사온 과자를 건네며, 혼자만의 호사를 누리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아이들은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거야!” 하며 과자를 뜯고, 와이프는 “쉬고 오라니까 왜 이렇게 쾡해졌어?”라며 핀잔을 준다. 사실 그랬다. 교토에서 보낸 10박 11일 동안, 나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채우려 애썼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더 담고, 더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죽은 시간이 생기지 않게끔.
하지만 그만큼 몸도 지쳤던 모양이다. 샤워를 하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니, 목과 얼굴은 심하게 타 있었고, 눈 밑은 움푹 꺼져 있었다. 예전의 내 얼굴로 돌아오려면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10월 13일, 월요일. 교토에서의 여정을 마친 뒤 처음 맞는 평일 아침이었다.

일본에 있을 때처럼 7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한국과 일본은 시차도 같으니, 몸이 아직 여행의 리듬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세면을 마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일본에서 매일 아침 마시던 녹차는 없었지만, 대신 익숙한 캡슐 커피가 있었다. ‘아, 여기가 다시 한국이구나.’ 그 한 모금으로 실감이 났다.

출근길은 첫날부터 엉망이었다.
지하철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태그하자 ‘사용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라는 안내음이 울렸다. 민망함에 뒤로 물러서서 충전을 하며, ‘그 사이가 꽤 길었구나’ 하고 웃음이 났다.

서울 지하철은 여전히 붐볐다. 일본의 출근길 풍경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한 가지는 달랐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방을 뒤로 메고 있었다. 나는 교토에서 늘 해오던 습관처럼 에코백을 앞으로 돌려 맸다. ‘배려는 나부터’라는 생각은 그곳에서 배워온 마음가짐이었다.

회사로 가는 길,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도 문득 느꼈다.
서로 눈치를 보며 길을 건너야 하는 이 풍경이, 일본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일본에서는 ‘선’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서로가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신호등처럼 말이다.

그렇게 출근길부터,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교토에서의 여정 뒤, 나는 회사에서도 조금은 다른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사내 메신저의 푸시 알림을 켜 두고, 손목의 진동에 맞춰 즉각 답하곤 했다. 예전엔 그게 ‘프로페셔널함’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림을 꺼 보기로 했다. 그 대신, 여유 있을 때 스스로 메신저를 확인해 보기로. 3일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시계를 볼 때마다 진동이 울리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급한 일이라면 상대가 전화를 걸겠지. 그렇게 나는 교토 이후, 세상을 ‘타인의 속도’에 맞추기보다 ‘나의 속도’로 살아보기로 했다. 그것이 이번 여행에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대답이었다.


교토에서는 나의 시간을 혼자 온전히 채웠지만, 돌아온 지금은 다시 다른 이들과 시간을 나눈다.
시간의 속도는 여전하지만, 피로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진짜 휴식은 여행이 끝난 후에야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우연히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중, 문득 카모강이 떠올랐다.
석조 다리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강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보던 그 시간.
그때처럼 나도 잠시 멈춰 서서, 점심 산책 중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전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로 여겼다. 일도, 공부도, 휴식조차 ‘야무지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삶을 이어주는 윤활유가 된다는 것을.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조차, 다음 시간을 채우기 위한 준비라는 것을.
교토의 카모강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속도였다.


그렇게 나의 교토는 끝났지만, 교토가 내 안에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내 일상 속을 천천히 흐른다. 카모강의 바람이 그랬듯,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며.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여전히 천천히 걷고 있다.


ゆっくりでいい、ちゃんと生きていれば。"천천히 가도 괜찮아,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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