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그 순간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요 며칠 정신이 없었다.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회사는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한 각종 보고서와 미비한 업무들로 분주했고,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의 결혼 소식에 야외 스냅을 찍어주느라 주말까지 카메라를 놓을 틈이 없었다.
교토 여행 중에도 틈틈이 단어를 외우며 준비했던 일본어 능력시험 1급. 여전히 열심히 공부 중이지만, 합격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여행을 마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교토의 시간 속에 머무는 듯하다.
시간은 언제나 나보다 빨리 흐르고, 내가 서 있는 현실의 풍경은 쉴 새 없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교토의 지금 날씨는 어떨까.
한국은 어느새 가을과 겨울이 뒤섞인 계절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는 경량 패딩 없이는 나가기 어렵지만, 한낮에는 다시 걸을 만하다. 다소 더웠던 교토의 햇살이 문득 그리워졌다.
여행 마지막 날, 숙소 옥상에 올라 빨랫감을 수거하며 잠시 느꼈던 따사롭고 푸르던 빛. 그 온기가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우연히 신용카드 결제를 하려 서랍을 열었다가, 그 안에서 교토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다섯 날 동안 내 발이 되어주었던 간사이 와이드 패스, 아마노하시다테에서 역무원이 바꿔주었던 교토행 티켓, 금각사와 은각사에서 받았던 부적 모양의 입장권, 그리고 호센인의 적막을 닮은 티켓 한 장까지.
하나하나 손끝으로 만져보니, 그날의 공기와 냄새, 소리까지 되살아났다. 그것들은 마치 “나, 당신과 함께 있었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무심코 꺼내 든 교토 여행기의 원고를 다시 읽었다.
출발 전 가족들에게 느꼈던 미안함, 숙소를 고르고 버킷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던 설렘, 그리고 매일의 기록 속에 담긴 감정들.
분명 내가 쓴 글인데, 다시 읽는 동안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라, 기억이 완전히 휘발되기 전에 메모를 보태기도 했다.
‘탈고’란 어쩌면 이런 과정일 것이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어색한 문장을 다듬고, 강조하고 싶은 대목을 고치며, 부사 하나로 분위기를 바꿔가며 원고를 정리했다.
예전에 들었던 글쓰기 수업에서 “탈고는 끝이 없는 자기만족의 영역”이라던 작가님의 말이 이제야 실감났다.
물론 여전히 이 원고들에 대해 자신은 없다.
‘이 글을 누가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읽어줄까?’ 하는 의심은 남아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분명, 내 이야기를 들어줄 독자 한 사람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 한 사람의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나는 문장을 다시 고친다.
사진 보정도 마찬가지였다.
교토의 풍경을 다시 불러내며 색을 입히는 동안, 그날의 공기와 감정이 되살아났다.
글과 사진은 결국, 같은 기록이었다.
여행의 첫머리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잠시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아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가족과의 시간은 여전히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만, 그 소중한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두며 ‘나’를 다시 만나는 일 또한 꼭 한 번쯤 필요하다는 걸.
잠시만, 교토에서의 11일은 바로 그 시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족과 일부러 떨어져 살 필요는 없지만, 잠시만 혼자 살아봄직도 하다.”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카모강을 달리며 느꼈던 여유,
평소와 다르게 아무 목적 없이 우지와 도게츠교를 거닐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시간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에도 평소와 다르게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였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이 현실로 돌아온 지금도 내 삶의 속도를 느즈막히 늦추어 주는 추억이 되었다.
삶은 100미터 전력질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다.
50미터를 달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천천히 50미터를 걸어가는 일임을,
잠시만, 교토에서의 11일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렇듯 교토에서의 시간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오버투어리즘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현지인들,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하던 여행자들,
그리고 나를 감싸주던 초가을 교토의 햇살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안을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결국, 자신과의 대화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었다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때 우리는 이전보다 더 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게 된다.
혼자 걷는 시간은 결국, 더 잘 함께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그리고 그 혼자 걷던 장소가, 자신이 오래 머물고 싶던 곳이라면
그곳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마음의 주소’가 된다.
내게는 교토가 그랬다.
잠시만의 교토였지만, 내게는 오래도록 남을 영원의 장소였다.
ひとり旅は、じぶんを見つめなおす鏡だった。“홀로 떠난 여행은, 나를 다시 비춰보는 거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