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을 만든다는 것

잠시만 교토를 완성해 나가는 기록들

by 빛담

가칭 ‘잠시만 교토’.

브런치에 연재했던 10박 11일간의 교토 여정을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기로 했다.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교토 여행을 홀로 갈까 말까 망설이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정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책으로 만들 수 있게 잘 기록해 오는 건 어때?”

그 한마디가 나를 움직였고, 나는 그 말을 충실히 지켰다. 그렇게 쌓아온 기록들을 이제 꺼내어, 또 하나의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이번엔 ‘책을 만드는 여행’이다.


일을 하다 보면, 요청하는 사람과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시간은 늘 다르게 흐른다.

요청자는 ‘지금 바로’ 해주길 원하고, 작업자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회사 일뿐 아니라, 가족 간의 부탁도 마찬가지다. 이번 책 제작 역시 그러했다.


교토 여행 이후 깨달은 건, 결국 ‘나만의 흐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요청자일 때에도, 혹은 작업자일 때에도, 서로의 리듬을 인정할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내 부탁을 미뤄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웃어넘기려 한다.


아내의 시간은 이미 단단했다. 오전에는 외출해 일을 하고, 오후엔 집안일과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책을 만들어 달라”는 내 요청은 당연히 부담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왜 시작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콘텐츠를 다 정리해뒀는데, 왜 망설이는지.

하지만 교토 카모강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빛담, 너의 시간의 속도를 남에게 강요하고 있는건 아니지?‘

그 질문의 여운이 내 안에서 대답했다.

‘그러게, 와이프는 그럴 수도 있겠다.’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명품 가방 하나 없는 그녀.

백만 원이 넘는 가방을 사주지 못했지만, 대신 매번 작게라도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이번엔 책 제작을 부탁하면서, 오래된 휴대폰을 대신해 최신형 접이식 폰을 선물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기뻐했고, 며칠 뒤, 마침내 책 작업이 시작되었다.


첫 단계는 ‘표지 사진’을 고르는 일이었다.

책 시장은 SNS와 비슷하다. 표지와 제목이 시선을 끌지 못하면, 아무도 책장을 넘기지 않는다.

우리는 ‘잠시만 교토’라는 제목에 어울리면서 일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을 골랐다.

그 사진은 아라시야마에서 5분 넘게 기다려 얻은 장면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 예쁜 장면이 올 것 같다.’

그 감은 정확했다.


제목도 그대로 가기로 했다.

‘잠시만 교토.’

이미 본문 곳곳에서 반복되는 표현이었고, 그 이상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다.

여행의 본질은 ‘잠시만 머무는’ 것이고, 그 잠시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이니까.


어제, 우리는 마침내 표지를 완성했다.

첫 책인 <일상의 빛과 그림자〉에서 사용했던 템플릿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아내가 물었다.

“그대로 써도 괜찮을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돼. 그게 우리 헤리티지잖아.”

맞다. 이제부터 우리가 만드는 책에는 ‘우리의 헤리티지’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며칠 전, SNS에서 우연히 본 글이 있었다.

“회사를 믿으면 안 되는 이유.”

15년 넘게 조직생활을 해온 내겐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거였다.

‘명함을 지우고,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라.’

그 문장을 읽고 오래 생각했다.


20대, 30대 초반엔 오직 ‘성장’만을 좇았다. 더 복잡한 시스템, 더 많은 트래픽, 더 빠른 회사.

하지만 매번 고배를 마신 뒤 깨달았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회사’와 ‘속도’가 있다는 것을.

지금의 회사는 눈에 띄게 성장하진 않지만, 안정적이고 사람들도 합리적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 밖에서의 ‘나’를 키우기로 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책’이었다.

길거리에서 예쁜 사진을 찍어가고, 글을 쓰며, 내 안의 감각을 꺼내어 세상과 나누는 일.

교토를 다녀오며 느낀 설렘과 미안함, 그리고 돌아와서의 여운을

그 모든 걸 한 권에 담았다.


글쓰기 수업에서 강사님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책은, 유통기한이 없는 명함입니다.”


그 말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나의 명함을 만들어갈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함께 책을 만들어주는 아내에게의 ‘수고료’는 잊지 않겠지만 말이다.

“잠시의 머무름이, 한 권의 책이 되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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