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대신 선택에 대해 생각해본 하루
회사에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선배가 있다.
체형만 봐도 비만이고, 본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늘 그 선배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마운자로, 아니면 위고비를 먹어볼까 고민 중이야.”
예전 같았으면 쉽게 나오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다이어트는 의지의 문제였고, 약에 기대는 선택은 어딘가 패배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감각이 조금 달라졌다. 노력의 방식도, 삶을 관리하는 방법도 분명히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선배는 요요를 걱정했다.
약을 끊으면 다시 식욕이 올라오고, 겨우 뺀 살이 다시 찔까 봐 두렵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요요보다 더 걱정되는 게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비만으로 인해 뒤따를 수 있는 성인병과 합병증이야말로 더 현실적인 위험이 아닐까 하고.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는 돈을 쓰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는 시간을 투자하라”고 말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제는 비만조차도 일정 부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위고비나 마운자로는 아직 저렴하지 않고, 약을 끊은 뒤 식욕이 돌아와 다시 살이 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게다가 돈을 주고 뺀 살은 다시 돈을 주고 관리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선택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돈을 주고라도 살을 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가 그 선배에게 강조한 건 ‘시간’이었다. 약으로 식욕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줄어들고, 술자리가 줄어들면 그동안 관성처럼 소비되던 시간들이 비게 된다.
그 휑한 시간은 어쩌면 독서가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저녁이 될 수도 있다. 이전 같았으면 맛있는 음식과 술, 사람들 사이를 오가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은 늘 뒤로 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이 그 흐름을 한 번 끊어준다면, 그 이후의 선택은 다시 개인의 몫이 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선배에게 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주고 살을 뺐기 때문에 요요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한 번 돈으로 해결해본 경험은, 다음에도 같은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혹시라도 살이 빠진 뒤, 이전까지 일상에서 다소 낭비되고 있던 시간이 독서나 가족, 운동으로 옮겨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일 수 있으니까.
나 역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집에서 거의 매일 실내 자전거를 탄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세 몸이 무거워진다. 2년 전 요산 수치가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비어버린 시간은 자연스럽게 사진과 글, 일본어 공부로 옮겨갔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삶의 작은 변곡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문명의 발달 속에서 우리 삶을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어줄 수 있는 계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그 선배가 실제로 비싼 돈을 들여 행동에 나설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고민 자체만으로도 나는 그 선택을 지지하고 싶다. 지금보다 나은 상태를 상상하고, 그 가능성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해보겠다는 마음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