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먼저 가르치고 싶은 것

by 빛담

부모도 처음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정답이 없다는 말을, 이제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나는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과 결핍이 알게 모르게 내 아이들에게도 스며든다고 믿는다. 그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꽤 솔직한 감정이다.

맞벌이셨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익숙해졌고, 그 덕에 또래보다 조금 일찍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가족 안에서조차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과일을 깎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다. 부모가 시켜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상황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청소 하나에도 꼼꼼하게 피드백을 주셨고, 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이던 나와 함께 백화점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하는 사람의 태도를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는 못해도 너만 손해지만, 일을 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피곤해진다.” 어머니는 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야기하셨다. “남들이 안 보는 데서도 제대로 하는 마음이 결국 네 인생을 만든다.

돌이켜보면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투영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의 교육관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느리고, 느슨하다. 영어와 수학, 예체능 정도만 하고 선행학습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방임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좋은 대학은 기회를 넓혀주지만 반드시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잘 보호받고 자란 아이가 작은 흔들림에도 크게 무너지는 장면을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일부러 넘어지게 하는 법을, 조금씩 연습시키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침, 아내 없이 아이 둘과 셋이서 집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다. 큰아이는 테이블을 닦고, 식기세척기에 있던 그릇들을 꺼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왜 이 그릇은 여기에 두는지, 그 기준에 대해서도 큰애와는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건 네 판단이야. 이유만 있으면 괜찮아.”

또한 작은아이는 내가 1차로 정리해둔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돌리는 역할을 맡았다.


식사 전후의 집안일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안일을 거든 뒤, 그들이 이 집의 구성원으로서 효용을 느끼고 있다는 건 분명히 보였다. 할 때는 싫은 표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분명했던 건 끝나고 난 뒤의 얼굴이었다.


나는 원없이 칭찬했다. 그리고 작은 용돈을 건넸다. 몇 천 원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꽤 큰 돈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꼭 안아주며 말했다.

“너희 덕분에 아빠가 일을 끝낼 수 있었어. 정말 큰 도움이 됐어.”


평소에 내가 그렇게 많이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참 좋았다.


육아에 대해, 정해진 정답은 없다. 아이 공부를 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면 나는 지금 기준으로는 실격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 식사와 집안일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역할을 해낸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공부보다 더 오래 남는 장면이 되길 바란다.


적어도 나는, 오늘 그 시간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