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과 자격지심이 동시에 남은 이사의 기록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위선적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말로는 집값이 더 이상 오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청년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자식 세대를 위해서.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속한 급지, 내가 선택한 아파트만큼은 시세에 맞게 평가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집은 1, 2푼짜리 물건이 아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집은 가장 큰 자산이고, 거의 전부에 가깝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가진 자산의 대부분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집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린 선택이 틀렸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사는 집은 분명 만족스럽다. 평수도 넓어졌고 생활의 질도 좋아졌다.
그래서 가급적 나는 집값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 이 공간을 숫자로 바라보는 순간, 지금의 만족이 쉽게 흔들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단지의 호가는 오르는데 거래는 없다는 말은, 아직 그만한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처럼 들린다. 계속 들여다보다 보면 잘 살고 있다는 생각보다, 자산의 관점에서 이사라는 선택을 잘못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먼저 올라온다. 그래서 가급적 부동산 가격을 보지 않게 되었다.
올해 8월, 이사했을 때만 해도 나는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달라진 공간이 반가웠고 숨길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사한 아파트가 소단지라서인지, 집값을 주도하는 단지가 아니라서인지, 이야기를 꺼내려면 부연 설명이 따라붙을 것 같아 굳이 먼저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거주의 공간을 넘어, 어느새 계급에 가까운 언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오늘 회사에서 오랜만에 그 선배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고, 이미 강남 3구에 진입해 자산을 불려가고 있는 사람이다. 안부를 묻던 선배가 말했다.
“빛담씨, 아직도 거기 살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네, 거기 살아요”라고 답했다.
사실 나는 이미 이사를 했다. 더 넓은 집으로, 지금의 삶에 더 잘 맞는 공간으로.
그 이야기를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선배는 “거기도 집값 많이 올랐던데”라고 말했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저녁 맛있게 드세요”라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겸손도 무심함도 아니었다. 내 선택에 대한 자격지심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이것도 다 자기만족의 문제다.
남들이 볼 때 나는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서울에 집 한 채가 있고, 평수도 넓어졌으며, 비록 잘 나간다는 지역만큼 오르지는 않았지만 떨어지지는 않는 곳에 살고 있다. 빚은 거의 없고 직장은 안정적이며 부모님도 건강하시다. 나 역시 큰 탈 없이, 가족 모두가 무탈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비교한다. 나 또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남의 자산은 커지고 내 자산은 그대로라는 생각 앞에서 알게 모르게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그 짧은 망설임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 감정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온 시간과 선택의 궤적을 지운 채 살 수는 없으니까.
다만 나는 또 여기에서 적응하고, 이곳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 또한 분명하다.
그렇게 오늘은 그 아쉬움과 함께,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알아차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