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글로즈는 왜 항상 주머니에서 익사할까

실종과 익사 사이: 립글로즈의 겨울 생존기

by 빛담

겨울이 되면, 나는 꼭 새로 사는 녀석이 있다.

바로 ‘립글로즈’. 이 친구는 겨울이 지나면 늘 실종 신고를 해야만 한다.


사실 아주 가끔은 이 친구가 스스로 집에 돌아오는 적도 있다.

다만 대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주머니 속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연이 더 많다.


‘그래, 내수 경제도 어렵다는데 그깟 립글로즈쯤이야.’

나는 호기롭게 쿠팡에 들어가 립글로즈를 찾는다. 하지만 비싼 건 잘 시키지 않는다. 어차피 행방불명되거나, 익사하거나. 둘 중 하나로 끝나는 불행 엔딩이니까.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약 2년째 함께하는 녀석. 사무실에 사계절 내내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립글로즈다.


다만 이 친구는 ‘생존’만 잘할 뿐 ‘활약’은 별로 없다. 아침 출근길에 이미 입술을 다 뜯어 먹고 회사에 도착해버리니, 글로즈는 구원투수로 등판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뜯긴 입술 사이로 그저 스며들어가며, “늦었지만 그래도 해볼게” 같은 표정을 지어줄 뿐이다.


‘2년이나 되었어. 저 녀석.’

무려 2년씩이나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나의 입술 구원투수.


이녀석과도 언제까지 함께 갈지는 모르겠다.

아마 사무실을 이사하는 날, 책상 서랍 어딘가에서 조용히 시체로 발견될지도. (섬뜩)


그래도 그 전까지는, 같이 잘 지내보자.

겨울은 길고, 내 입술은 늘 먼저 뜯겨져 있고, 그럼에도 너는 늘 한 박자 늦게라도 내 입술을 구하러 들어와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