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라는 말들을 이겨낸 N1
두근두근해서 사실 잠을 잘 못 잔 것 같다.
오늘 11시, 작년 12월 7일에 응시했던 JLPT N1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평소 일본어 공부할 때 자주 들르던 네이버 ‘일공사’ 카페에, 잠이 도통 오지 않아 새벽에 접속했다.
일본 현지에서 먼저 시험을 본 사람들은 속속 합격 인증을 올리고 있었고, 잠도 오지 않는데 그런 글들을 보고 있으니 나만 더 초조해졌다.
사실 그 글들을 본다고 내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애꿎은 내 손가락은 자꾸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발표 전날,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나답게, 이과답게, F이지만T답게.
조건문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세워두면 마음이 좀 가라앉을 줄 알았다.
if, 불합격이면 7월에 재도전하거나, 혹은 포기한다. N2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else, 합격이면 영어회화를 공부하고, 올해 3월 ‘잠시만, 도쿄’ 출간을 위해 일본어 회화에 더 시간을 할애한다.
바램같아서는 else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if일 수도 있기에, 이렇게 정리해두고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종화야, 너 정말 잘했어. 그동안 너 스스로를 얼마나 몰아붙였어. 이 정도면 됐어.”
불안지수가 유달리 높은 나로서는, 곧 있을 결과 발표가 너무 떨리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나를 위로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리고 있었다.
JLPT는 1년에 꼴랑 두 번뿐이고, 발표까지도 너무 늦다.
탈락해도 재도전하기엔 시험일과 발표일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사실 지금도, 작년 12월의 내 일본어 능력과 지금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니까. 그래서 나는, 만약 if라면 깔끔히 포기하겠다고 결심해둔 상태였다.
발표 당일, 새벽에 잠깐 선잠이 든 뒤 평소 알람이 울리던 7시 50분에 눈을 떴다.
몸이 시험 결과를 알았을까. 이상하게 눈꺼풀이 가벼웠다. 회사에 오면서도 일공사 카페 글만 계속 살펴보았다. 그걸 본다고 내 시험 결과가 바뀌지도 않을 게 뻔한데 말이다.
왜 이렇게까지, 나는 마흔이 넘어서 일본어 공부에 빠지게 되었을까.
원래 일본 문화를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일본어를 포함해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이 정도로 공부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원해서’ 무려 2년여간 스스로 공부를 지속해낸 건 오직 일본어 능력시험 관련 공부, 단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일본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가 있었다. 어순도 익숙했고, 히라가나는 상냥하게 생겼다. 게다가 한자와 히라가나가 조합되면 한국어를 보는 듯 뜻이 편하게 들어와서 공부가 더 즐거웠다.
게다가 일본 관련 사진을 주로 촬영하며 일본인 인스타그램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일도, 내게는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묘미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렇게 머릿속에서는 시험 결과에 대한 불안감과 ‘내가 왜 일본어를 공부해왔지?’라는 질문이 번갈아 오갔다. 나는 그렇게 출근을 했다.
예상밖으로 시험 결과는, 원래 발표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앞당겨 나왔다.
JLPT는 내가 답지를 챙겨갈 수 없는 시험이라, 응시 후에는 오롯이 기억에 의존해 사람들이 올려둔 답지와 비교하며 가채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N1은 그마저도 포기했다. 시험장에서 느꼈던 난이도가 내겐 압도적이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풀었는지조차 기억해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약 두 달간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견뎌야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 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결과를 확인하고도 한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합격.
하지만 사실상 불합격. 180점 만점 중 101점, 합격 커트라인을 딱 1점 넘긴 합격이었다. 합격자 중에서는 내가 거의 꼴지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도 이 불합격에 가까운 합격 통보를 받은 뒤 비로소, 입가에 웃음이 번져 나왔고, 알 수 없는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합격’이라는 결과서를 받아 들고, 샘솟던 아드레날린이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서야 지난 2년의 일본어 공부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뭐 이 정도야 그냥 붙는 거 아닌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충 공부해서 대충 턱걸이로 넘겼던 N4가 떠올랐다.
N4와 친구 난이도라고 생각했지만 문제집을 펼치자 갑자기 확 어려워진 벽 앞에서 당황해 어쩔 줄 몰랐던 N3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합격해보겠다고 주말엔 웨딩 알바를 나가고, 비어 있는 시간엔 한자와 문법 하나라도 더 외우겠다며 공부를 이어가 결국 합격했던 시간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아주 예전 내 짝사랑이 고등학교 때 취득했다는 N2가 떠올랐다. 비록 그녀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때의 나는 그녀가 획득했다는 일본어 능력시험 N2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시작된 N2를 공부하며 처음으로, 그나마 잘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일본어 독해 분야에서 아주 큰 벽에 부딪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벽을 이겨내고 얻어냈던 자격증은 ‘내가 해냈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N1. “이 정도면 정말 된 거 아냐?” “N1은 굳이 안 따셔도 되잖아요. 워킹홀리데이 갈 것도 아니고, 일본 가서 일할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들려오던 ‘포기’를 종용하는 메시지들을, 내 특유의 반골기질로 버텨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학원을 다니고, 사내 독서실에서 홀로 일본어와 싸우며, 결국 1점 차로 통과한 이번 N1 결과까지. 돌이켜보면 N4를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쉬운 레벨이 없던 도전들이었다.
지난 2년간의 공부 여정을 돌아보면 쉬운 길은 없었다. 돈도 안 되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본어 능력시험. 고작 인구가 1억 명 남짓한 나라의 언어, 영어에 비하면 확장성도 크지 않은 시험.
그런데도 나는 그 순간을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긴 기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불완전한 합격증’을 들고 어디 내세울 곳은 없다. 기껏해야 차기 여행 에세이 ‘잠시만, 도쿄’의 작은 에피소드 한켠을 채워줄 수 있을까, 하는 정도다.
다만 이 종이 한 장을 손에 넣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본 여행에서의 자신감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는 여태껏 ‘1등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정쩡하고 애매모호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룰 수 있는 만큼 이루며 타협해 살아가는 건 대부분이 그러고 있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수능 때도, 대학 때도, 회사에서도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1등급’이라는 공인된 자격을 손에 넣었다.
이런 성취감을 이루어낸 나 자신에게, 매번 ‘어정쩡하게 사는 놈’이라며 자기비하를 서슴지 않던 내 그림자가 조금 옅어졌다.
그리고 이번의 성취를 계기로, 짧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힘과 인내심이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쁘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는 살되, 너무 ‘열심히’만 살지는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승부를 볼 때만큼은, 그리고 그럴 가치가 스스로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만큼은, 이번의 성취를 백신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얻은 일본어 능력시험, 무려 ‘101점’짜리 불합격에 가까웠던 합격증은, 내게 다시 한번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아직 내 머리속에서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확실히 각인 시켜 준 징표였다고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