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번아웃, 분리가 정답이 아니었다.

by 도로도로

이렇게까지 육아에 지쳤던 적은 없었다. 남편은 회식으로 안 오지 아이는 잠투정하지. TV도 다 켜고 나의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이미 여러 가지 상황으로 지쳐있었다. 그냥 복직하고 시터님 좋은 분 구해볼까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번아웃이 오니 남편한테도 짜증이 생겨났고 나 스스로도 한탄하게 되는 너무 안 좋은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주말에 지방을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 나는 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2박 3일 가기로 했다. 짐을 싸다가 괜히 간다고 했나 후회도 했다. 친정은 나 없이 아이를 보는 걸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손주를 보는 데 능숙하지는 않으셔서 어차피 내 시간을 따로 나가서 가질 수도 없는데 가서 괜히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첫날을 친정에서 보내고 나는 내 생각이 틀렸었구나 깨달았다. 나는 육아 번아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이와 잠시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나와 같이 이뻐해 주고 하루 종일 같이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를 신경 써 주는 사람과 같이 육아를 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나를 위해 마트에서 나뚜루 아이스크림을 딱 하나 사놨었다. 얼른 먹으라고 비싸더라 하는데 그것부터가 감동이었다. 엄마는 겨울이라 너도 부츠가 필요하다고 홈쇼핑에서 바로 주문해 주고 잠옷이 왜 이렇게 쿰쿰하냐고 바로 잠옷을 사다 주셨다. 그리고 매번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날 위해 일부러 반찬을 해서 삼시세끼를 차려주고 간식까지 챙겨주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를 거의 눕혀놓지 않았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놀아주고 세워주고 안아주고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아이와 놀아주니 아이도 계속 아빠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씻으러 가면 엄마가 책 읽어주고 너무 귀엽다고 계속 놀아주니 아이도 잠도 잘 자고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아이도 결국 분위기를 다 아는구나 어쩌면 잠투정을 했던 건 나의 번아웃을 인식한 아이의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육아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첫 아침 수유다. 이침에 잠이 덜 깬 상태로 아이를 데려와서 혼자 거실에서 우두커니 밥을 주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뭐가 싫은지는 나도 잘 몰랐다. 근데 친정에 가니 엄마아빠가 아이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니 아침 하는 소리, 도란도란 두 분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다가 아이가 깨어나서 수유를 하고, 엄마 아빠는 먹는 아기를 보며 귀여워해주니 그 순간이 단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 내가 그 순간이 힘들었던 게 적막과 함께 첫 육아를 시작해서였구나 이 순간을 같이 이렇게 환하게 맞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순간이 단 하나도 힘들지 않구나.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육아의 번아웃을 해결하는 길은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나를 같이 진심으로 케어해 주는 사람과 온종일을 함께 하는 거구나라는 걸 느꼈다. 원래 엄마 아빠가 아이를 봐주는 동안 논문 수정이나 할까 하고 노트북을 가져갔지만 거의 하지 않고 이 순간을 소중히 만끽했다. 우울해서 우는 게 아니라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서 눈물이 맺힌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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