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도시와 그의 인간군상을 세련되게 비판하는 방법
공포분자(Terrorizers/1986년/대만/드라마범〮죄)
감독: 에드워드 양
각본: 샤오예, 에드워드 양
촬영: 장전 쨩쟌
출연: 리리종(리리쥔), 조우위펀(매우 코라), 수안(왕안), 샤오창(마푸쥔)
살면서 ‘닥치고 예매’해야 하는 영화를 만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교과서적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였던 에드워드 양(2007년 작고)의 ‘공포분자’가 바로 그런 영화다. 타이페이 3부작 중 유일하게(85년 ‘타이페이 스토리’-86년 ‘공포분자’-91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왓챠나 넷플렉스에서도 볼 수 없는데다, 꼭 봐야겠다면 영상자료원을 가면 되는데 팬데믹으로 영상자료원 이용도 제한이 많은 작금의 상황에서 리마스터링본을 상영관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빠른 도시화가 이루어지던 80년대 중반의 타이페이를 배경으로 네 명의 인물이 교차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생인지 아닌지 모호한 정체성을 띄는 10대 비행소녀 수안(왕안)이 급박하게 고층에서 뛰어내린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샤오창(마푸쥔)이 마침 그 자리에 있었고, 수안의 찰나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샤오창의 피사체인 수안은 어느새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 이와는 별개로 등장하는 조우위펀(매우 코라)은 의사와 결혼한 전업 소설가다. 남편인 리리종(리리쥔)은 그녀에게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주지만 불행히도 그게 다다. 무미건조한 리리종과 살면서 창작의 한계를 느낀 조우위펀은 옛 남자와 내연관계를 가지고, 아무 것도 모르는 리리종은 ‘더 안정된 삶’을 위한 승진을 하고자 거짓말을 한다. 결국 남편을 떠나 완성시킨 ‘결혼실록’이 올해의 작가상을 받게 되고, 영화는 그녀의 소설 내용과 맞물리며 영화 속 현실과 소설의 허구가 뒤엉킨다. 현실과 허구가 뒤엉키면서 모호했던 네 인물의 관계는 오히려 뚜렷해진다.
초중반까지는 부부인 조우위펀과 리리종을 제외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이들의 모습이 병렬식으로 이어지다가 수안(왕안)의 장난전화를 계기로 중간 이후부터 네 사람의 서사가 정교하게 연결되며 모든 인물이 한 번은 만나게 되고, 후반부로 가면서 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던 극에 긴장감과 속도가 붙으면서 끝내 파국에 이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홍콩 느와르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진 찍는 샤오창이라는 인물 덕분에 사진이 영화의 미장센적인 장치로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가 스틸 사진 같은 순간이 많다는 점에서도 <공포분자>는 단순히 내러티브 하나로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영화가 나열하는 순간 순간의 그림들, 무채색을 띄는 당시의 타이페이의 색채적 질감과 숨막히는 새벽의 공기, 우연인지는 몰라도 영화 속 장치(인물과 인물을 구분하는 창 틀이나 문, 네모의 갖힌 이미지들) 안에 철저히 속박된 프레임 속 프레임들은 당시의 타이페이를 살아보지 않았더라도 도시화로 야기되는 비인간화를 그리고자 했던 감독의 철저한 작가주의 정신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에드워드 양 감독은 “얼마나 많은 힘과 긴장이 제한된 시간 속에 드러나는가를 관습적인 방법으로 드라마와 인간을 소개하고 흥미를 유발하기보다는 영화의 조명, 카메라 웤, 편집 등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서 발췌).” 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