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iss Secret 9

과학과 뜀박질의 상관관계

by 에이첼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궁금증이 생기자마자 중1이 되었다.


나름 초딩 때 올백으로 야무지게 포니테일을 하고

삐져나온 머리를 똑딱 핀으로 꼭꼭 눌러 고정해

깔끔하고 멋스러운 둥근 해가 떴습니다 st.


파란색과 보라색 선이 번갈아가며 차려자세로

서 있던 스트라이프 멜빵바지,

삐에로 바지라며 반 친구에게 쿡쿡 웃음을 주었던

나이스한 바지였다.


초등학교와는 180도 다른 점은,

전교생이 다 같은 교복을 입는다는 것.


멋짐이라곤 1도 없는 교복을 단체로씩이나 입다니,

이젠 더 이상 나의 개성을 뽐낼 방법이 없었다.


이런 개성이 사라진 중학생의 나는

성적마저 눈에 띄지 않는 중간에 위치함으로써

회색 교복을 입은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런 회색 투명인간에게 그날의 일은,

개성으로 눈에 띄고 싶은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개망신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중1 때 나는 과학이 꽤나 재미있었다.

특히 생명에 관한 부분이 흥미가 있었는데,

굳이 운동장만큼 넓고 큰 노트를 두고

교과서 윗부분, 아랫부분, 옆 부분에 빼곡히

수업의 내용을 메모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내가 지금까지도 잘하는 것이,

좋아하는 과목의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또는

좋아하는 선생님의 과목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과학이 좋아져서,

가르쳐주신 선생님도 좋아졌다는 말이다.


지금 읽고 계신 분들은,

어린 학생의 첫사랑 선생님 이야기 인가 싶은가?

나이 지긋하신 여자선생님이셨다. *^^*


엄청 다정한 말투는 아니셨고

오히려 냉정한 말투셨는데,

그 말투와 과학이란 과목의 어울림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문제의 그날은 과학과목의 숙제가 있던 날이었다.


숙제는 당연히 했으니,

아주 돈이 철철 넘칠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돈이 철철 넘쳐본 적은 없지만 넘쳐보고 싶습니다.)


"수업 끝나고 종 치면 숙제를 과학실로 가지고 와야 해.

단, 복도에서 뛰면 안 되는 것 알지?

선착순 10명까지만 숙제받을 거야."

이런 모순적인 말씀을 하시는 과학선생님이 처음으로

과학과목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보였다.


숙제를 안 한 것도 아니고 했는데

1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숙제가 안 한 것이 된다?

게다가 뛰면 안 되는 복도를 뛰지 않고

30명이 넘는 학생들에서도 10명 안에 들어야 한다?

이런 과학적이지 않은 제출방식은 왜 선택하신 걸까,

처음으로 과학선생님의 호감도가 조금, 아주 조금

계단 내려가듯 내려갔다.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

교실에는 공기가 없듯 숨 막히는 고요함이 흘렀고,

그와는 다르게 친구들의 몸은

이미 문쪽을 향해 있었다.

하얀 실내화를 신은 다리들은 드릉드릉,

카레이싱 시작 전 자동차의 부릉부릉 시동 켜듯 했다.


그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스타트 라이트가 되었고

모든 학생들이 풀악셀을 밟았다.


처음에 나는 뛰지 않았다, 뛰지 말라셨으니까.

'이런 젠장! 다 뛰잖아!!!'

모두가 다 뛰는데 거기서 안 뛸 사람 누가 있으랴?

내 발걸음은 뚜벅뚜벅 걷다가 슈슈슉 경보를 하다가

결국 뜀박질의 경기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금 뒤처지긴 했지만

이대로 뛰어가면 10등 안에는 들 수 있었다.

집중해서 정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뛰었다.

뛰기만 경주마처럼 뛰었어야 했는데,

앞만 보라고 씌우는 가림막까진

쓰고 뛰지 말았어야 했다.


쾅!


내 눈앞에는 1학년 12반의 뒷 문이 활짝 열렸고,

뒷 문에 나는 황소가 빨간 깃발에 들이받듯 부딪혀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F=Ma

이 말인 즉,

엄청나게 아팠고, 엄청나게 쪽팔렸다.

1학년 12반엔 내가 좋아하던 남학생이 있는 반이었고,

고개를 들어 보니 뒷 문을 연 당사자가

그 남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이라 애들은 쓰나미 밀려들듯 복도로 향했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반 애들은 넘어져있는 나를 흘끗 보면서

하나 둘 나를 지나쳐 과학실로 향했다.


쪽팔리고 아프고 허탈하게 터덜터덜

과학실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뛰지 말랬잖아."

이 말을 남긴 채 과학선생님께선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과학과 뜀박질의 상관관계에서

나는,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숙제를 한 것과는 별개로

뛰지 않고 선착순 10등 안에

숙제를 제출하는 것만 인정된다는 것이,

14살의 소녀에게 무슨 의미가 되었는지

선생님은 아셨을까?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구나.


숙제를 안 하고 걸어서 10등 안에 제출했다면,

선생님께선 숙제를 한 것으로 인정해 주셨을까?


그때부터였다,

어려운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의미가 된 것.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과학선생님을

더 이상

좋아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다.


과학도 다시는 좋아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좋아하는 것이 하나 사라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