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 단비, 삼식이, 삼돌이, 백도 그리고 버니까지
이 이름들은 나와 함께 했고 함께하고 있는 반려동물들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 사는 아이는 버니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넜거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이다.
제일처음 우리 집에 온아이는 아지였다.
아지는 암컷이었고 하얀 몸에 검은 점박이가
있는 암컷이었다.
암컷이라서인지 아지는 참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고 아지는 성격대로
생애 마지막을 우리 가족에게 보이기 싫어
집안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당시 나는 집을 떠나 있었고
부모님이 뒷산에 정성껏 묻어 주었다고 한다.
삼식이...
삼식이는 아지와 미니핀 사이에서 태어난
아지의 아들이다. 까맣고 삐쩍마른 삼식이가
너무 예뻤고 내가 키우겠다며 막무가내로
우겨댔다.
삼식이를 키울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졸업하기 전 마지막 4학년을 자취를 하면서
삼식이를 데리고 가서 키웠다.
함께 강의실도 가고 피시방도 가고
지금의 남편과 데이트를 할 때도 늘 함께였다.
삼식이는 그렇게 나와 함께 졸업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함께 살던 할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삼식이는 마당에서 자유롭게 키웠기에
대문을 열어두면 나가버려 대문을 꼭 닫아 두어야 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대문을 닫는 걸 늘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 삼식이가 없었다.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렇게 삼식이는 사라졌다.
나는 울면서 온 동네를 누비며 찾으러 다녔고
도로가 가게에서 새벽에 검은 개가 차에 치여 있는 걸
청소차가 치웠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그날은 7월 17일 제헌절이었다.
지금까지도 제헌절이 되면 삼식이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결국 삼식이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채 눈물로
삼식이를 보냈다.
아지는 두 번째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바로 단비다.
단비는 엄마를 닮아 정말 순했고
우리 가족과 제일 오래 살았다.
암컷이지만 새끼 한번 못낳고 부모님과 함께
오래 오래 살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검정 강아지였다.
그렇다면 삼돌이는 누굴까?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퇴근길에 늘 지나치던 동물병원이 있었다.
동물병원겸 팻샵을 함께 운영하던 곳으로
닥스훈트 새끼들이 꼬물 거리며 노는 모습이
늘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상하게도 검은 개에 끌렸던 나는
닥스훈트가 아른거려 늘 그 앞에서 서성거리고 했다.
마침 나보다 더 강아지를 좋아하던 남편이
닥스훈트를 사주었다.
결혼전이고 집에는 이미 아지와 단비가 있었기에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없어서 남편 자취방에서
삼돌이를 키웠다.
삼돌이는 정말 미운 4살처럼 별나고 천방지축이었다.
벽지를 다 뜯고 정말 교육이 힘든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출근한 사이
삼돌이는 가출을 했다. 어떻게 문을 열고 나갔는지
아직도 아이러니하다.
삼돌이를 집에 데리고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었다.
남편과 나는 프린트까지 해서 온 동네 전봇대에 붙여보았지만
귀여운 아기 삼돌이는 끝내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다시는 강아지를 안 키울꺼라 다짐을 하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친정집에 아지와 단비를 두고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살면서 반려동물을 키울려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몇 년 전 오갈 때가 없는
잉글리시 블록이 있다며 남편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다.
사진을 본 순간 하얗고 귀여운 블독에게 반해버려
결국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천방지축 아기가 우리 집에 온 것이었다.
하얗고 귀여운 강아지라서 백도라는 이름을
내가 직접 지어주었다.
교육을 시키자 금방 똥오줌까지 가리는
내 눈에는 천재 강아지였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예방접종을 하는데
수의사가 그 개 키우기 힘드실 거예요?
라고 말했을 때.. 힘들면 얼마나 힘들까? 했는데
백도는 먹성도 어마무시했고
물을 먹으면 온 얼굴에 물과 침이 범벅이었고
몸이 커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몸이 무거워지자 백도는 걷기만 해도
아랫집이 울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층간소음으로 밑에 집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이라 백도까지 오면서 더 심하게 항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백도를 시골로 보내기로 했다.
둘째와 나는 시골에 두고 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우리 다시는 강아지 키우지 말자고 또 다짐을 했다.
그 후 백도를 시골집에서 키우던 시어머니는
개밥주기가 귀찮다면 영국 혈통의 백도를
단돈 만원에 개장수에게 팔아 버렸다.
백도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았고 나와 둘째는
어머니를 한동한 미워했다. 아니 지금도 미워한다.
또 다시 이제 우리집에서는 강아지 키우는
일이 없을꺼라며 키우자는 소리는 절대 하지말자며
다짐하며 그렇게 지내왔다.
2년 전 외가식구 모임에서
사촌 동생이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엄마도 아이도
개털 알레르기가 심해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며
혹시 강아지 키울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사람도 삐쩍 마른 사람을 고르더니
비쩍 마른 이탈리안 그레이 하운드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고민이었다.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결정하면 안될 것 같았기에 남편이 키우겠다고 하면 키우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남편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루 데리고 있어보고 순하면 키우겠다고 했다
그렇게 버니는 6살이 되어 우리 집으로 왔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와서 그런지 버니는
눈치도 있고 정말 순했다.
전 주인이 6년을 키워도 가리지 못하던
똥오줌도 금방 가릴 수 있도록 가르쳤다.
하지만...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정을 줄 수가 없었다.
많은 아이들을 보내면서 많이도 울었기에
버니와 정이 들면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버니에 대한 모든 것들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강아지와 거리를 두는 사이
상상이 되는가?
버니와 함께 산지 2년이 흘렀고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고 있다.
버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세 남자들이 다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거리를 두며 사냐고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강아지를 사랑했고
정성을 다해 키워보았기에 이별의 슬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버니를 키우면서도 남편과 나는 말한다.
버니야 네가 우리에겐 마지막이라고...
늘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계속계속 키워왔던 우리
반려동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앞으로 버니와 어떤 추억을 만들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버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함께 하길 바란다.
남편은 늘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다가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