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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Sep 08. 2024

행복한 과소비


느지막이 일어난 오후

남편은 벌초 가고 시험기간인 두 아들은

공부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공부장소로 떠났다.

일요일 오후 집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모처럼 맞이하는 일요일 무엇을 할까?

오랜만에 경주를 갈까?

경주에 있는 작가님에게 연락도 해보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서 포항에 가 있다고 한다.

바로 경주행을 포기한다.

그럼 어딜가지?


문득 떠오르는 한 장소

며칠 전 밴드에서 본 전시소식이었다.

작년에 보고 너무 좋았던 전시였는데

얼마 전 예술회관에서 하던 전시도 놓쳤던 터라

좋아하는 카페에서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메모를 해두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래 오늘은 카페에서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즐겨야겠어'


오랜만에 혼자만의 카페 나들이라

에코백에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일단 읽을 책 두 권

그림 그릴 간단한 도구

글을 쓸 블루투스 키보드

그리고 물까지 꼼꼼히 챙겨서 출발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작가이신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오랜만에 본다며 맛있는 청귤에이드 한잔 내오겠다며

그림 구경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이럴 땐 내가 기자 봉사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공간으로 가서 그림들을 러 본다.

김이란 작가는 우리 지역인 울주 작가로

푸근하고 친근한 아줌마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이번 그림도 푸근한 그림들로 가득하다.

난 한 그림 앞에 섰다.


<어느 봄날의 과소비>라는 그림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장 보러 나왔다가

한 손 가득 꽃다발을 들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참 정겹다,


가끔 5일장에 가면 지나치지 못하는 가게가

한 곳 있는데 바닥에 쭈욱 늘여놓고 파는

꽃을 파는 가게다.

형형 색깔의 꽃들이 얼른 나를 데리고 가라며

다양한 컬러와 향기로 나를 유혹한다.

그 유혹에는 도무지 당해낼 제간이 없다.


꽃은 피면 떨어지는 게 싫다

떨어진 자리는 상처가 난 것처럼

지저분하고 보기에 좋지 않다.

꽃에 이끌려 갔다가 나는 잎만 무성한 식물만

한아름 들고 오기 일쑤다


이 그림 앞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본적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가끔 우리 동네에 오는 꽃을 파는 트럭이 있다.

한 다발에 2천 원 3천 원 5천원이러 써놓고

포장도 없이 신문지에 돌돌 말아

저렴하게 파는 트럭 장사

살까 말까 수도 없이 고민하다 그냥 지나치길 여러 번

사실 단 한 번도 구매한 적이 없다,


그림 속 아줌마는 2000원짜리? 꽃다발을 들고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가족들을 위해 장 보러 나왔다가

부려본 그녀만의 과소비

2000원의 행복이라고 해야 하나?


카페 테이블에 앉아 생각해 보니

나도 오늘 나만의 과소비를 부리고 있다,

오기 전에 지인 카페에서 꼬마김밥을 먹으며

이곳까지 행복하게 달려왔다.

매운 어묵 김밥이 맛이 좋아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드라이브하듯 달려서..


전시 취재차 온 카페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이 주신

청귤에이드와 디카페인 드립 커피로 호사를 누리고

작가가 오마쥬 해서 그린

앤서니 브라운의 나의 상상미술관 책도 겟했다.

금액이 후들후들한 책이었지만 기분 좋게 소비해 본다.


생각지도 못한 소비였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은 날이다

책방카페 작가님이 어머니 드리라며

책도 한 권 선물로 주셨다.

나는 감사해서 어제 받아온 졸업 사화집 한 권을 선물했다.


아마도 사진 속 주인공의 표정이

지금 내 표정과 같지 않을까?


아마도 그림 속 주인공도

처럼 행복한 과소비 놀이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루종일 이곳에서 놀려니

배가 슬슬 고프다.

소금빵 두 개를 더 시켜서

내 뱃속의 기분도 채워본다.


나는 오늘 온몸으로 과소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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