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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11. 2023

사춘기 소년 소녀 마음 사로 잡기

경주 문화재 해설 두 번째_부산 친구들과

2주 전 경주 문화재 해설사 데뷔 이후

두 번째 해설을 나가는 날

어제는 기사에 파묻혀

기사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완전 불량 해설사 같으니라고)


이번 경주 코스는 조금 바뀌었다.

오전 경주 박물관

점심

오후 태종무열왕릉->김유신장군묘->포석정

코스로 짜여 있었다.


저번과는 오후 일정이 바뀌어 있었다.

신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

틈틈이 책도 보고 자료도 보고 메모는 해두었지만

직접 읽어보고 시연 비슷 하게라도

해봐야 입에 익는데 하지를 못했다.


차에서 공부하려고 해도

이번에는 내 차로 이동하는 거라

차에서 공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박물관에 일찍 도착해서

저번과 다른 문화재를 미리 서치 해두고

맑은 정신을 위해 더블샷을 넣은 커피를 한잔 하며

몽롱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늘 나의 학생들은

6학년과 중1

거부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과의 역사수업

과연 순조로울까?

앞전에 고학년을 했던 선생님이

비협조적이었다는 말에 너무 걱정이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나도 사춘기 소녀가 될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이 도착했다.

여학생 6명과 남학생 1명으로 구성된 나의 조

초등학생들보다 움직임이 많이 더디다.

박물관은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많은 인파가 몰려

유명한 문화재는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내 맘도 모르고

우리 조 여학생들의 이동속도는 더디다.


먼저 성덕대왕 신종을 설명하고

신라역사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붐비는 곳

아니나 다를까

금관총 유물실부터 정체다.

금관총을 지나 황남대총에서도 몇 개의 유물을 놓치고

겨우 천마총금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인증 사진을 찍으라고 했지만

사춘기 소년 소녀들은 사진 찍기를

겁나게 싫어한다.

저번에 만난 3.4학년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몇 명의 아이들은 뒤떨어져 오고

설명할 때도 저 멀리 구석에 가있고

계속 가까이 오라고 부르는 게

나의 일이었다.


다행히도 남학생 1명과 여학생 1명은 적극적으로

내 옆에서 설명을 들어주고 대답도 곧잘 해주었다.

서로 티키타카로 오고 가는 재미가 있어야

나도 설명할 때 힘이 나고

흥이 나서 설명도 술술 잘 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말이 턱턱 막히기 시작한다.


다행히 중간중간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퀴즈를 내면 아이들 눈이 말똥 말똥 해진다.


그렇게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고

배불리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니

아이들의 눈빛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근처에 오지 않던 친구들도

슬슬 가까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도 슬슬 장난도 치고

재밌는 말로 유혹해 보고

아이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면서 해설을 풀어가니

아이들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오후는 이동하는 게 많다 보니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책 속 빈칸도 채워가며 적극적으로 따라주는 모습에

너무나 즐거웠다.


마지막 포석정에서는 그렇게 사진 찍기 싫어하던

아이들이 나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 주었다.

거기다 셀카까지



이 정도면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증거겠지.


점심을 먹고 이동 중에

둘째 송군이 전화가 왔다

- 엄마 해설은 잘하고 있어? 힘들지 않아

- 너 같은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하는데 힘드네

- 나 같은 아이가 몇 명인데?

- 음 7명!

- 엄마 힘들겠네. 파이팅

둘째의 응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둘째의 전화에 힘이 났던 것일까?

그래서 오후 일정은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 겨우 두 번의 해설이었지만

해설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몇 시간을 함께 다니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짧은 시간이지만 정이 든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늘 헤어짐이 아쉽고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픈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오전의 냉랭함이

오후가 되자 따스한 온기로

선생님을 대해주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은 정말 어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 포기하지 않고

따스한 온기를 계속해서 뿜어 준다면

분명 그 따스한 온기는 다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오늘 만난 사춘기 아이들에 나는 배운다.


오늘도 나는 사람 즉 아이들을 통해 또 한 발

성장하고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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